전진영기자
"스즈메, 상냥해. 좋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한국에서도 흥행하고 있습니다. 누적 관객 수가 400만명을 돌파했죠. 특히 고양이 캐릭터 '다이진'의 인기가 큰 것 같습니다. 슬램덩크에 이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에 일본 언론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열풍에 주목하는 모양새입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일본 기자들이 이 열풍을 취재하면서 꼭 묻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영화가 어떻게, 얼마나 와닿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스즈메의 문단속이 다루고 있는 주제 때문인데요.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니, 영화 속에 일본의 역대 큰 재난을 암시하는 부분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 주는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즈메의 문단속이 암시하고 있는 일본의 역대 큰 재해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스즈메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모두 일본에서 역대 큰 재난을 입었던 지역입니다. 스즈메는 살던 규슈 미야자키현을 떠나 배를 타고 시코쿠 서부에 위치한 에히메현으로 이동합니다.
이곳에서 스즈메는 불길한 기운이 나타나는 곳을 감지해 "저기는 어디냐"고 묻고, "몇 년 전에 산사태로 무너져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바로 이곳은 2018년 7월 '서일본 호우'로 불리는 수해 피해를 입은 지역입니다.
2018년 6월 28일부터 7월 8일까지 서일본을 중심으로 집중호우가 쏟아지는데요, 에히메현이 있는 시코쿠 지방에는 이때 총 강수량이 1800mm가 넘었다고 합니다. 에히메를 포함한 지역에서는 하천이 범람하고 산사태가 발생해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합니다. 1985년 300명 가까운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나가사키 대수해' 이후 최악의 피해로 손꼽힙니다.
수해 지역에서 다시 일어날 재난을 막은 스즈메는 이후 관서 지방 효고현의 고베시로 이동합니다. 고베는 한국에서도 큰 지진이 발생했던 곳으로 알려진 지역인데요, 바로 1995년 1월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입니다.
당시 효고현 앞바다에서 단층이 움직여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하는데, 고베 등 관서 지역이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사망자 6400여명, 부상자는 2만7000여명에 달했고 2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합니다. 일본에서는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됐습니다.
특히 1946년 이후로 관서 지방에는 큰 지진이 없었기 때문에 큰 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이 피해 규모를 더 키운 것으로 지적됩니다. 빌딩, 빌라, 병원, 기차역까지 붕괴하거나 반파돼 더 큰 피해를 키웠습니다.
다만 고베는 이 지진을 기억하고 극복하는 지역으로 영화에서 묘사됩니다.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고, 사람들이 회식하는 등의 장면이 많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신카이 감독은 이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큰 재해를 입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평범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스즈메가 만나게 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고베의 재난을 막고 스즈메는 도쿄로 이동합니다. 일본의 수도로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곳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굳은 결의를 보이죠. 가장 갈등이 고조되는 하이라이트 신으로도 볼 수 있는데요.
도쿄에서 재해를 예고하는 어두운 기운 '미미즈'는 여태 본 적 없는 가장 큰 규모로 솟아오릅니다. 이는 겪은 적은 없지만, 앞으로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지진을 보여줍니다. 바로 도쿄를 진원으로 진도 7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는 수도직하지진입니다.
도쿄도는 지난해 이 지진이 발생할 경우 사망자 6100명, 부상자가 9만3000명 이상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건물 피해는 19만4000동에 이르며 이재민은 299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남해 협곡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큰 진도 9 지진 '난카이 트로프'와 더불어 우려하는 가장 큰 지진 중 하나입니다.
이 때문에 실제로 도쿄도에서는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리스크를 가정해 5년마다 한 번씩 행정구역별 건물 붕괴 위험도, 화재 발생 위험도, 재해 시 구조 어려움 등을 측정해 '수도직하지진위험도'를 측정하고 있습니다.
신카이 감독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동일본 대지진이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재해가 신카이 감독에게 줬던 영향이 커서, 이전 작품이었던 ‘너의 이름은’은 이재민과 도쿄에 사는 학생의 영혼이 뒤바뀌는 이야기를, ‘날씨의 아이’에서는 수도 도쿄가 물에 잠기는 이야기들이 계속 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스즈메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아름답던 어촌마을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울타리로 ‘귀환 불능구역’이라고 막아놓은 곳을 지나가고, 곳곳에 검은 봉투가 쌓인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로 오염된 지역의 주민을 이주시키고, 오염된 흙을 걷어내 검은 봉투에 넣어 쌓는 ‘제염 작업’을 하는 모습입니다.
스즈메의 고향은 이와테현으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현, 미야기현과 함께 3대 재해 지역이 된 곳입니다. 실제로 신카이 감독은 이와테현의 모리오카시에서 열린 영화 무대인사에서 “극 중에서 명시는 하지 않았지만 스즈메의 고향으로 이와테현을 상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동일본대지진은 일본 지진 관측 역사상 최고 규모인 M 9.1을 기록했고, 쓰나미가 발생해 1만5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야 했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수습에 나서는 상황입니다. 스즈메는 이곳에서 지진 피해를 겪었던 당시의 자신과 마주하고, 남겨진 사람들과 이를 치유하게 됩니다.
이처럼 영화는 이전에 발생한 지진, 그리고 앞으로 발생할 지진에 대한 불안한 심리와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지진이 일본처럼 자주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를 한국에서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러한 일상생활에서의 불안감은 주인공들의 대사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남 주인공 소타는 “사라지고 싶지 않다. 더 살고 싶다”, “목숨이 덧없다는 것을 안다. 죽음이 항상 곁에 있음을 알고 있다”라는 대사를 내뱉습니다. 이는 여태 지진을 겪었고, 앞으로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을 감내해야 하는 일본의 심리가 많이 녹아든 부분입니다.
신카이 감독도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 겪게 될 것이다. 흔들리는 나라 위에 살며 땅이 흔들린다는 상상에 겁을 먹고 살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다녀올게”와 “다녀왔습니다”라는 대사가 많이 나오는 이유도, 자연재해가 이 인사를 단절시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는데요.
다만 동일본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의 문제가 떠오르면서, 이 시점에 이러한 영화가 적절한지에 대한 지적은 끊임없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아사히신문은 “12년이 지난 지금도 원전과 이를 둘러싼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사회 문제를 덮는 미화가 허용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죠.
동일본지진 피해자 측에서는 “사건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니 오락용으로 가볍게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지만,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