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기자
“6개월은 계속 멀어졌는데, 점점 돌아오더라. 과거 내가 ‘(돌아가신) 엄마를 잊고 있네’라고 걱정할 때 남편이 ‘걱정마. 다시 돌아와’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더라.”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1주기를 맞아 강인숙(90) 영인문학관장이 밝힌 고백이다. 반세기 넘게 함께했던 남편을 먼저 보낸 지 어느덧 1년. 1주기를 맞아 국립중앙도서관과 함께 남편이 생전 사용하던 유품과 단독 집필한 185권의 책을 전시한 특별전 ‘이어령의 서(序)’를 마련했다.
고인이 생전 사용했던 책상과 가방, 안경, 필기구 등이 전시대에 올랐다. 24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기자들 앞에 선 강 관장은 “사실 소장품을 안 내고 싶었으나, 여기도 선생님(남편)이 와 계시다고 생각하고 냈다”고 웃어 보였다.
고인은 강 관장에서 자랑스러운 존재였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픈 사람.” 남편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을 묻는 말에 그는 평론집 ‘저항의 문학'을 꼽았다. 평론집이 나온 시기는 결혼 이듬해인 1959년. 강 관장은 “1950년대에는 평론집이 없었다. 평론 자체가 드물었다”며 “그만큼 열심이셨다”고 전했다.
고인의 육필원고 한점도 공개했는데, 강 관장에 따르면 고인은 평소 집필할 때 만년필을 고집했으며, 밑줄을 긋거나 표시할 때는 꼭 노란색 펜을 사용했다. 강 관장은 “그래야 복사나 프린트할 때 표시가 안 난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남편의 육필원고를 챙기기 시작한 건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이후인데, 남편은 1987년부터 컴퓨터 워드프레스를 사용했기에 육필원고가 많지 않다고도 부연했다.
평소 7대의 컴퓨터를 사용하며 생각을 데이터로 전환해 저장했던 이 전 장관. 유족에 따르면 고인이 된 후 찾아보니 그의 컴퓨터에는 8테라바이트(TB·1천24 GB)의 자료가 확인됐다. 강 관장은 “컴퓨터에 뭐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이 안 될 정도로 자료가 많다”며 “여러 분야의 학자를 모셔다가 자료를 정리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전했다.
올가을부터는 이 전 장관의 서재를 공개할 예정이다. 강 관장은 “매년 봄이면 다양한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하려 한다”며 “’문학사상‘ 목차도 좋은 전시 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관장은 이 전 장관이 유난히 ’새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자신은 뭔가를 잘 안 바꾸는 성미지만, 남편은 새것을 좋아해 조화가 알맞았다는 것. 그는 “특히 컴퓨터는 새것이 나오는 대로 바꾸셨다”며 “(자신은) 용케 버림받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고 웃어 보였다.
이날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유족 주관으로 추모식과 개막식이 거행됐다. 문화계 인사 150여명이 자리를 메웠고,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축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