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국제전망]‘세계화시대’의 종말…우크라戰이 바꾼 세상

EU 국경개방 원칙 흔들려…안보위험↑
국경없던 다국적 기업, 대러제재 대거 동참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세계화(Globaliztion)는 거의 죽었다. 자유무역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난 6일(현지시간) 나온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의 창업주, 장중머우 회장의 발언이 전 세계적으로 회자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완전히 달라진 국제정세를 상징하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냉전 종식 이후 30여년 만에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전까지 이어지던 세계화의 기조를 뒤바꿨다. 세계화의 주축이던 유럽연합(EU)의 국경 개방조치까지 위축시켰다. 미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전개하던 공급망 이전은 러시아까지 포함돼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확산됐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서구권과 제3세계 간 활발히 진행됐던 세계화가 위축되고 서방과 그 동맹국에 제한된 반쪽짜리 세계화, 즉 ‘재세계화(Reglobalization)’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30년 만에 뒤바뀐 세계…EU 솅겐조약도 흔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 8일 EU 내무장관이사회는 크로아티아를 회원국 간 자유로운 국경 출입을 허용하는 솅겐조약 가입국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가입을 요청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합류는 불발됐다고 밝혔다.

크로아티아는 2013년 EU에 가입했고,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이보다 6년 앞선 2007년에 EU에 가입했다. 이에 따라 두 나라의 합류가 더 유리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결과는 달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난민이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로 쇄도할 것을 우려한 오스트리아 등 일부 국가가 불법 이민 유입을 우려하며 반대해 두 나라의 합류는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화의 상징과도 같던 EU에서조차 지역이기주의가 작용한 것이다.

이 같은 세계화 기조의 위축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타임스(NYT)는 "2차 대전 이후 세계 지역총생산(GDP)에서 국제무역의 비중은 2008년 금융위기 직전 61%를 정점으로 꾸준히 하락 중"이라며 "각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하며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높이 쌓은 상태에서 코로나19 펜데믹이 터졌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경장벽까지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게리 허프바우어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화의 종언을 고하는 시대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국적기업도 대러제재 대거 참여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탈냉전의 상징이던 코카콜라 등 다국적기업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대거 대러제재에 동참하며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한 것도 탈세계화 현상의 상징으로 꼽힌다.

영국 BBC에 따르면 코카콜라는 지난 6월 대러제재 동참을 종용하는 전 세계적인 보이콧 운동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러시아 시장에서 전면철수를 결정했다. 코카콜라가 전시 제재로 철수를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카콜라는 1939년 2차대전 발발 당시에는 독일 코카콜라 공장을 철수하지 않고 미국 정부의 원료수출 금지를 우회하고자 '환타(Fanta)'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1965년 냉전 시기에는 당시 공산권 국가 중 처음으로 불가리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코카콜라뿐만 아니라 스타벅스, 맥도널드 등 냉전 종식의 상징과도 같던 다국적 기업 브랜드들이 대러제재에 동참한다며 일제히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그동안 국경장벽이 없다던 다국적기업들이 전세계적인 대러제재에 마지못해 동참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앞으로도 기업들은 각국의 정세와 국제사회의 여론향배에 따라 언제든지 시장철수를 준비해야하는 거대한 리스크를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美·유럽 대서양 무역 강화…탈세계화 아닌 재세계화"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앞으로 과거 냉전시기처럼 서방과 그 동맹국들로 제한된 재세계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컨설팅업체인 매킨지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인 현상은 탈세계화가 아닌 재세계화"라고 강조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서방과 적대적인 국가와 달리 미국과 유럽, 그 동맹국들 사이에 공급망과 교역은 오히려 견고해지며 세계화 현상이 일부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미 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9월 미국이 EU와 영국에서 수입한 상품의 규모는 507억달러로(약 66조원) 중국산 수입품 규모인 492억달러를 넘어섰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이전 속에서 대서양 교역이 더욱 활성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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