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서율기자
[아시아경제 황서율 기자] 주택 매매가격의 하락세가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다만 하반기부터 집값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현상은 잦아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매매거래가 올해보다는 늘 것으로 예상된다. 집값 하락 전망과 고금리로 매매에서 전월세로 옮겨타는 추세 역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택시장 침체로 건설사 부도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융권 부실로 전이될 우려가 커지면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은 12일 발표한 ‘2023년 주택시장 전망’을 통해 고금리와 경기위축, 부동산 세제 정상화 지연 등으로 내년에도 집값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주산연이 경제변수와 주택수급지수를 고려한 예측모형으로 내년도 주택 매매가격을 예측한 결과 전국 주택가격은 전년 말 대비 3.5%, 전국 아파트 가격은 5.0%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단,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정점을 지나면 하락폭은 둔화하기 시작할 것으로 봤다. 기준금리가 하향 전환될 수도 있는 4분기 중에는 수도권 인기 지역부터 보합세 또는 강보합세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내년 주택 매매거래량은 하반기부터 집값 급락세가 꺾이고 매수심리가 되살아나면서 올해보다 39% 증가한 75만호 수준일 것으로 봤다. 지난해 말부터 인천·대구·세종에서 시작된 집값 하락세가 올해 6월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났다. 올해 연간 주택 매매거래량은 작년 절반 수준인 54만호 수준으로 추정되면서 이는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06년 이후 최소 거래량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와 집값 하락전망 등으로 매매수요가 전월세로 전환되면서 올해에 이어 내년 전월세 거래 역시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9월 말까지 매매거래는 전년 대비 49% 감소한 반면, 전월세 거래는 26.3% 증가했는데 이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고금리와 전세대출 어려움 등에 따라 월세 수요가 많아지면서 지난 9월 주택 임대차 거래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최초로 50%를 초과했다.
월세 수요가 급증하면서 월세 상승세는 내년 하반기 중 기준금리가 하향 전환되는 시점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월세 가격 변동은 그동안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올해는 입주 물량 증가와 월세 전환으로 반대 방향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까지 전세는 1.7% 하락한 반면, 월세는 1.4% 상승했으며 내년에도 전세는 4.0% 하락, 월세는 1.3%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택공급 지표도 좋지 않다. 내년 주택 인허가 물량은 올해보다 30% 줄어든 38만호 수준으로 예상되며, 착공과 분양 물량은 이보다 더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분양 시장 전망이 악화하면서 건설사의 물량 밀어내기로 올해 인허가 물량은 작년과 비슷한 55만호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착공과 분양물량은 20% 수준으로 감소하고 있다. 주산연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이후 3년간 주택 인허가 물량이 30% 정도 감소한 점까지 고려해 내년 역시 물량 감소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주산연은 "인허가 물량 급감으로 공급부족이 누적되면 경기 회복기에 집값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반복될 수 있다"며 "LH 등 공공부문에서 민관 공동방식 등으로 주택건설을 확대하고, 민간이 확보한 토지에 팔리지 않는 분양아파트 대신 수요가 많은 임대주택을 건설하도록 정책을 보완하는 등 대체 공급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주산연은 주택시장 침체, 부동산 PF 중단 등으로 내년 상반기 중 건설업체 부도가 급증하고, 하반기부터 제2금융권 부실로 전이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현재 부동산 PF는 거의 중단된 상태이며, 브릿지론과 ABCP(자산담보부 어음)로 지원된 자금의 대환이 막히면서 건설업체의 자금난이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내년 상반기 중 보유현금이 부족한 건설업체의 부도가 발생, 하반기부터는 이들 업체에 자금을 지원한 2금융권의 부실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단기간 집값이 폭락해 주변시세가 분양가보다 낮아지면 미분양과 계약 해지 요구가 급증한다는 점도 건설업체 부도의 위험 요소 중 하나다. 준공 후까지 미분양과 입주 거부가 늘어나면 자금력이 약한 건설업체는 어음 등을 막지 못해 부도에 이를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때와 지금 상황을 비교해서도 상황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주택담보대출과 건설사업에 PF 조달방식이 거의 없었고, 금융위기 때는 주담대 LTV(주택담보인정비율)가 평균 38% 수준이었으며 PF 조달 비율도 높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짧은 기간 금리가 급상승하고 평균 50%에 육박하는 LTV, 높은 PF 조달 비율로 두 시기보다 리스크가 훨씬 더 큰 상황이다.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주산연은 건설 사업 금융경색 완화, 미분양·미입주 주택 해소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주산연은 "우량사업은 PF 분야에서 산업은행·기업은행 등 공적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앵커링이 필요하다"며 "주택금융공사(HF)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여력을 활용해 보증지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은행 자금, 주택기금 등 공적자금, 건설 관련 공제조합의 여유자금 등을 활용해 유동성 지원 규모도 늘려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건설업체가 보유한 토지에 대한 대체 사용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건설업체들이 확보해둔 토지에 공공자금이 지원되는 분양 전환용 임대주택을 건설하도록 정책을 보강해 업계의 자금난에도 도움을 주고 안정적인 주택공급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방안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표준건축비를 현실화하고 분양전환가격 기준을 개선하는 등 관련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임대아파트 임대료와 분양전환가격 산정의 기준이 되는 임대아파트 표준 건축비가 분양 아파트의 50% 수준에 불과해 사업성 확보가 어렵고, 분양전환 가격과 관련한 분쟁도 끊이지 않아 민간사업자가 임대아파트 건설을 기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분양·미입주 주택 해소를 위해서는 가급적 민간 보유 여유 자금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50조가 넘는 국민 주택기금 여유자금 등을 활용해 젊은 무주택자를 위한 자금지원 체제를 보완하고, 노후자금 등 여유자금을 가진 사람들이 미분양주택을 사서 임대할 수 있도록 아파트 등록임대사업을 복원하고 주택 거래와 보유 관련 세제도 정상화할 것을 당부했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