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선진국2030-2부]①'식당價 보다 싼 급식카드…오늘도 편의점행'

사회적 약자 사각지대 시리즈-겨울이 추운 아이들
결식아동 30만명
아동급식카드 한끼 7000~8000원 지원
사용처 다변화에도 10명중 4명은 편의점 라면, 김밥 의존

편집자주대한민국은 선진국일까. 국회 입법을 통해 '선진국의 방향'을 모색하려고 마련한 '복지선진국2030'기획에선 지난 '1부-발달장애인'편에 이어 이번에는 '결식아동'과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소년)'을 다뤘다. 학교 급식이 멈추는 방학동안 매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결식아동들의 겨울, 아동양육시설 등에서 퇴소해 준비되지 않은 어른을 맞아야하는 보호종료아동들의 겨울을 살펴보고 국회 차원에서의 입법, 대응 마련안 등을 모색해보려고 한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체험학습으로 떠난 놀이공원. 민정(가명, 16세)이는 놀이기구를 타고 난 뒤 간식 사먹자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침을 삼켰다. 떡볶이세트에 1만1000원, 라면도 6000~7000원씩 하는 가격이 부담스러워 서성임 끝에 닭꼬치 하나를 집어들었다. 다음달 수술을 앞둔 아빠가 "돈 신경쓰지 말고 먹고 싶은거 사 먹고 와" 하며 주신 돈에서 4500원을 겨우 꺼내썼다. 민정이가 아동급식카드로 ‘밥 한끼’를 사먹을 수 있는 돈은 7000원. 닭꼬치 4500원은 지금 생각해도 사치인 것 같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중학교 3학년 민정이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한 부모가정이자 기초생활수급가정에 속하는 결식아동 대상자다. 뇌전증과 무릎 지병을 가진 민정이 아버지는 12월 수술이 예정돼 있다. 이전에는 가끔 일용직 근로로 공사 현장에서 차량 통제를 하는 일을 해왔지만, 수술 때문에 수입도 끊기고 그나마 민정이 고등학교 때 학원비로 쓰려고 모아왔던 적금도 깰 지경이다.

한창 먹고 싶은거 많을 나이지만 민정이는 학교 급식 외에 오후 5시 편의점에서 사먹는 김밥, 라면이 남은 하루 끼니의 전부다. 영양가를 생각할리 만무하다. 결식아동에게 각 지자체에서 제공되는 아동급식카드로는 한 끼 7000원까지 사용할 수 있는데, 식당에서 사 먹을 메뉴가 없다. 지난 8월부터 8000원으로 오르긴했지만 놀이공원에서 파는 닭꼬치 2개도 먹을 수 없다.

아버지는 수술로 입원하게 되면 혼자 남겨질 민정이가 걱정이다. 현재 1식 7000원씩 계산해서 월 15만원 가량 지원되는 급식카드는 방학동안 약 24만원으로 늘어나 끼니 해결에 문제는 없겠지만, 집밥만큼 영양가 있게 먹을 순 없기 때문이다. 민정이 아버지는 "저 혼자서도 집에서 계란국, 미역국 정도는 끓여먹을 수 있는데 급식카드로는 그런 것도 구매가 안되니 매번 편의점에서 김밥, 라면만 사올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집밥이랑 가장 비슷하게 식당에서 밥을 사먹으면 좋을텐데, 아이들이 혼자 식당에 가서 먹으려고 하나요. 눈치도 보이지만, 그보다 급식카드를 받는 식당 찾는 게 일입니다."

민정이 아버지는 "동네에 중식당이 10곳이 넘게 있는데 급식카드를 사용하는 곳은 1군데 밖에 없다"면서 "자장면을 시켜먹으려고 했더니 그나마도 1만원 이상부터 배달해준다고 해서 자장면 먹기도 힘들다"고 했다.

간혹 자장면을 먹고 싶은 날이면 1만원 이상을 채우기 위해 군만두고 함께 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1만원 이상 주문해 결제하면 다음날 쓸 수 있는 비용은 줄어든다. 전일 미리 써버렸기 때문이다. 물가도 계속 오르고 있어서 요즘은 매월 17일 정도면 이미 한 달 급식카드를 다 써버린다고 했다.

결식아동들을 위해 각 지자체가 지원하는 아동급식카드는 편의점 뿐만 아니라 일반식당에서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아직도 사용하지 못하는 식당들이 많아 제한적이다. 1식에 7000~8000원씩 지원비가 나오지만, 기본 결제단위가 1만원이라 자장면을 배달해 먹기도 쉽지 않다.

"마트 같은 곳에서도 쓸 수 있게 하면 굳이 비싼 편의점서 안쓰고 재료 사서 집에서 해 먹을 것 같아요."

달걀요리에 가장 자신이 있다는 민정이는 일부 식당, 편의점 등으로만 제한된 아동급식카드가 대형마트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주말에 장을 봐서 일주일치 식재료를 사오면 좋겠다고 귀띔했다. 민정이 아버지는 "우유 하나를 사려고 해도 편의점은 마트보다 1.5배 비싸다"면서 "계란만 사도 집에서 다양한 걸 해먹을 수 있다"고 아쉬워했다. 편의점에서도 계란을 살 수는 있지만 ‘삶은 계란’이라는 게 문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민정이와 같은 국내 결식아동은 2021년 기준 30만2231명이다. 2015년 42만6594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6년 새 12만명 이상이 감소했다. 크게 줄어든 것 같지만 이는 ‘절대치’가 주는 착오다.

통계청 연령별 인구를 보면, 결식아동이 속해있는 연령대(19세 미만)의 아동 자체가 2015년 960만명에서 2021년 790만명대로 줄었다. 전체 비교집단 내 비중으로 따지면 결식아동은 2021년 기준 3.8%로, 여전히 100명 중 3~4명(2015년 4.4%)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아동급식카드 지원비 확대와 사용처 다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최근엔 지자체별 금액 상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지원금액 확대와 함께 식사의 질, 영양상태, 돌봄 교육과의 연계성 등을 따져 정책을 보다 세심하게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한다.

고완석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은 "결식아동들의 급식지원비도 문제지만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살펴봐야한다"면서 "통계로 보면 편의점에서의 사용 비율이 40%가 넘는데, 영양가 있는 고루 섭취해야하는 성장기 아이들이 편의점 음식으로 충분히 해결되고 있는지 등을 따져봐야한다"고 했다.

고 팀장은 "우리 사회가 아동들을 충분히 돌봄서비스하고 있는지, 단순히 식사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돌봄과 건강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장기 아이들은 사실 ‘마음껏 먹어라’해야 하는데, 7000원, 8000원어치만 먹어라 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2022년 우리 사회가 7080년대와 비교해서 단순 끼니해결만 하게 해주는 게 옳은지, 더 건강한 음식을 다양하게 섭취할 수 있도록 해줘야하는 사회에서 ‘결식’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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