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남북경협, 정권과 무관해야'…경협인들의 눈물 호소

'남북경협기업 도전과 좌절' 발간한 김기창 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장
1994년 北 건나물 유통에서 백두산 들쭉술까지 판매하다 5·24조치로 줄파산
"정권 바뀔 때마다 경협 기조 뒤바뀌는 건 무책임한 처사"

김기창 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 회장./윤동주 기자 doso7@

[아시아경제 장희준 기자] "북측에서 남측으로 출경하는 북측 출입국 사무실에 있는 (CIQ) 관리소 앞마당과 연결돼 있는 곳에 <개성상점>이란 면세점을 건설하여 이를 30년 사용하는 조건으로 3만3000㎡(1만평) 규모를 2007년 계약했다. 이곳은 북측의 군사 관리지역으로 일반인의 통행은 엄격히 제한되는 특수지역이다.

북측의 표현대로 무관세상점 사업이 활성화되면 남측의 고속도로 휴게소같이 품목 수를 계속 늘릴 계획이었다.

(중략)

북측과 경협사업을 시작한 1994년부터 2022년 현재에 이르는 기간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남?북 경협이 중단된 원인을 북측에서 제공했다고 이야기한다. 핵실험, 금강산 피격사건, 천안함 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돌발사태가 생길 때마다 남측 정부는 금강산관광 중단, 남?북 교역 및 투자 중단, 최후의 보루로 남아 있던 개성공단의 폐쇄 조치까지 내린 바람에 북녘땅에 투자한 우리 기업인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 의하여 한마디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고 황당하게 내려진 개성공업지구의 폐쇄는 앞으로 역사의 평가가 내려지기는 하겠지만, 그게 최선의 방책이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과연 통일을 이룩해 낼 자질을 갖춘 민족인가?" <남북경협 기업들의 도전과 좌절> 발췌내용

김기창 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장(75·사진)이 남북경제협력인들의 도전과 애환을 담은 '남북 경협기업들의 도전과 좌절'을 발간했다.

김 회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남북 간에 꼬인 매듭을 풀고 언젠가 경제협력이 재개됐을 때 후대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을 전해주고 싶었다"며 발간 배경을 밝혔다.

연합회는 올 4월 경협 사업자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개성공단과 달리 북한 땅 곳곳에 흩어져 사업을 진행한 탓에 그간 한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지만, 더 늦기 전에 '경협 중단 장기화'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고자 뭉쳤다. 당초 경협에 참여한 기업의 수는 1400곳을 넘겼으나 현재 명맥이나마 유지하는 건 300곳도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 이명박 정부 시절 5·24조치로 파산됐다. 연합회 결성 과정에서 연락이 닿은 건 150곳 남짓이다.

김 회장은 1994년 대북 경협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말린 고사리를 비롯한 건나물을 유통하다, 백두산에서만 자생하는 들쭉나무의 열매로 '백두산 들쭉술'을 만들었다. 난관을 헤치며 사업을 안정시켰을 즈음 2010년 5·24조치로 하루아침에 내쫓겼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김기창 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 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일부 앞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국회를 향해 경협 중단 장기화에 따른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장희준 기자 junh@

김 회장은 "경협 중단이 기약 없이 길어지며 폐업은 물론 정신적 충격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까지 있었다"고 회고했다. 대다수의 경협 사업자는 이때부터 내리막을 걸었다고 한다. 사업을 위해 받은 대출금은 갚을 길이 없었고 이자는 계속 불어났기 때문이다. 비교적 나중에 시작된 개성공단 사업은 보험 제도가 마련돼 있었지만, 모든 게 처음이었던 경협 당시에는 보험조차 없었다.

김 회장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경협 재개만 기다리고 있는 만큼 대출금 탕감과 투자금 전액 보상, 손실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정적인 사업 여건이다. 남북 관계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사업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경제 교류로 분단의 벽을 넘은 경협 1세대는 대부분 70~80대에 다다른 고령이 됐다"며 "더 늦기 전에 조국을 위해 경협에 뛰어든 이들이 역대 정부의 무책임한 판단으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알아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간이 흘러 남북교류가 재개되고 경협이 다시 이뤄지려면 국민 모두 남북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지금은 갈라져 남처럼 지내지만 결국 같은 뿌리라는 것을 알고 더 큰 미래를 그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최근 남북관계가 다시 긴장 국면에 접어드는 상황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남북 경제협력이 요원하다는 우려에 "한민족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관계 개선 여지를 어떻게든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통일이 민족의 숙원이듯이 경협 또한 우리가 이어가야 할 숙제"라며 "정권이 바뀌는 것과 무관하게 경협이 지속될 수 있도록 법이라도 만들어달라"고 토로했다. 새 정부의 출범과 대북 경협이 무관하도록 법을 세우는 건 어렵지만, 그의 말은 정부가 보다 체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주길 바라는 것으로 읽혔다.

그는 "정부도 (이 책을 통해) 경협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 경협의 기조까지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체계적인 사업 발판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마지막까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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