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만에 문연 어린이식당에 아이들 웃음 한가득…복지사들은 ‘긴 한숨’

지난달 31일, 4주 만에 다시 연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어린이식당'
아이·학부모 모두 만족 "돌봄 부담 덜어준다"
고물가에 지난 6월부터 하반기 예산 끌어쓰기 시작
"복지 지속성 있어야 신뢰하는 사회 만들어질 것"

지난달 31일 부산 동구 수정동에 위치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에선 4주 만에 '어린이식당'을 열었다. 도시락을 받아가고 있는 한 어린이. /사진 제공=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들 수 있겠어?" 초등학생 3학년 남자아이가 도시락과 즉석밥, 햄 통조림, 참치 통조림, 김 등이 담긴 박스를 들자 사회복지사들이 걱정하며 대신 들어주려 했다. 아이는 손사래치며 한 팔엔 도시락을 걸고 자신의 몸집만한 박스를 들고 나갔다. 하지만 엄마를 만나자 아이는 "팔 떨어질 것 같다"라며 영락없는 어린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렸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려가고 오후 7시가 되자 사회복지사들은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 여름의 해가 완전히 저물고 오후 8시쯤 돼서야 퇴근했다.

지난달 31일 부산 동구 수정동에 위치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에선 4주 만에 '어린이식당'을 열었다. 식중독 위험에 닫았던 어린이식당을 다시 준비하기 위해 사회복지사들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어린이식당은 2019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와 돌봄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부산 동구에 위치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관들은 심사 끝에 선정된 어린이들에게 양질의 식사를 제공한다. 부산종합사회복지관에 찾아오는 어린이는 총 21명이다.

높은 산들이 즐비한 부산 동구. 점차 인구도 줄어들고 있으며 고령화 현상도 발생하는 지역이다. /사진 제공=초록우산어린이재단

부산 동구 어린이들이 부산종합사회복지관의 어린이식당으로 오려면 가파르고 복잡한 길을 헤쳐서 와야 한다. 부산 동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부산항과 함께 주요 거점으로 발전하던 곳이다. 자재를 나르기 위한 부산역까지 생기면서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 땐 부산 동구에 위치한 수정산 등에 사람들이 피난 오면서 여러 집들이 생겼다.

하지만 갈수록 산이 많은 지형의 한계에 봉착하며 낙후되기 시작했다. 1980년 21만명 정도였던 인구는 올 4월 기준 8만8000명정도로 줄었다. 지역 자체도 고령화되고 있다. 부산 동구 전체 인구 가운데 아동 비중은 약 11%에 불과하다. 광역시인데도 부산 동구에 있는 좌천초등학교가 2008년 폐교될 정도다. 아울러 부산 동구의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11.3%로 부산 전체 평균치인 6.5%를 상회한다.

부산종합사회복지관도 고도 97m에 달하는 높은 곳에 위치했다. 그럼에도 어린 아이들은 매주 어린이식당에 찾아와 도시락을 받아가고 있다. 이날 아이들이 집에 가져 가는 도시락엔 돼지고기 김치볶음과 미역국, 오이지, 취나물, 김부각 등으로 가득 찼다. 성인 남성 혼자서도 먹기 힘들 정도의 양이다. 17년 간의 초등학교 영양사 경력을 지닌 조리사 조미자씨(64)는 "아이가 집에 도시락을 가져가면 4인 가족들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음식을 준비한다"라고 말했다.

돌봄 공백 속 어린이 돕는 '어린이식당'…선순환으로 이어져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조미자(64) 조리사. 그는 혼자서 40인분에 가까운 음식을 준비한다. /사진 제공=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이들은 어린이식당에 만족했다. 음식도 맛있지만 도시락을 나눠주기 한 시간 전부터 미리 와서 놀이방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쿠션 재질로 만들어진 놀이방에선 아이들이 힘껏 뛰어놀 수 있다. 제대로 된 놀이터나 키즈카페가 없는 부산 동구에선 아이들에게 천국과 마찬가지인 공간이다. 초등학교 4학년 A 어린이는 "여기 오는 것이 너무 좋아요. 친구들이랑 놀 수 있는데 음식도 주고, 맛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부모님들은 어린이식당 덕분에 한시름 놓는다고 설명했다. 학부모 문모씨(43)는 "단순히 하루 식사 비용을 아끼는 것보다 하루 한 끼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일하는 엄마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라며 "그냥 도움을 받기보단 직접 나와서 식사 만드는 것을 거들거나 주변 아이들과 학부모와 인사하고 돕는 등 선순환도 생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물가에 난관 봉착…자립준비청년도 "모든 게 비싸져서 걱정"

부산 동구의 동네 식자재점에서 장을 보고 있는 배금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과장. 배 과장은 고물가와 함께 비싸진 식자재를 여러 번 들었다가 놓았다. /사진 제공=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선순환은 생기고 있지만 복지관은 한숨이 나오는 상황에 봉착했다. 고물가 때문이다. 올해 부산 동구청의 어린이식당 보조금은 한 끼당 7000원 기준으로 지급됐지만 고물가로 인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사회복지사들의 설명이다. 올해 부산종합사회복지관이 동구청으로부터 지급받은 보조금은 2000만원으로 전체 어린이식당 예산 8636만원 가운데 약 23%를 차지한다.

식사를 준비하는 사회복지사들을 더 싼 재료를 찾기 위해 하루 두시간 넘게 장을 보고 있다. 이것저것 둘러보지만 가격표를 보고 내려놓기 일쑤다. 이미 6월부터 올 하반기 예산과 다른 사업의 예산을 끌어쓰고 있어 더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배금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과장은 "지역사회에 기여도 해야 한다는 방침에 부산 동구에 위치한 식료품점에서 식자재를 구해야 해 아주 싼 가격에 구매할 수도 없다"라며 "매번 식료품을 찾을 때마다 계획을 넘어서는 만큼 예산을 쓰고 있어 앞으로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부산종합사회복지관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자립준비청년 B씨(20) 역시 고물가를 체감하고 있다. 3살 때부터 보호시설에서 살다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혼자 살기 시작했는데 장 보기가 무섭다는 것이다. B씨는 "한 달 20~30만원정도로 식비를 유지하고 있는데 모든 게 비싸져서 걱정이다"라며 "저녁엔 즉석밥, 김, 계란으로만 계속 떼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윤영 부산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은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돼 움직이는 어린이식당 모델을 정착하려 하는데 비용 등으로 인해 쉽지가 않다"라며 "복지의 지속성이 유지돼야만 아이들과 어른들이 사회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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