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안중근...김훈 “고뇌는 무거웠지만 처신은 가벼웠다”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이순신과 안중근은 김훈 작가가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다. 그가 생애 꼭 작품으로 다뤄보고 싶었던 인물. 앞서 ‘칼의 노래’로 이순신을 다뤘다면, 이번엔 신작 ‘하얼빈’으로 안중근을 조명했다.

3일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 참석한 김훈은 몹시 멋쩍어 했다. “이런 배경(출간기념회)을 만들지 말라고 했는데 출판사에서 만들어 식은땀이 난다”며 어색하게 사진 포즈를 취해보였다. “‘칼의 노래’를 넘어서는”이란 마케팅 문구에도 “내가 이거 하지 말랬는데...”라며 난색을 표했다. 급기야 신작 ‘하얼빈’을 들고 포즈를 취해달라는 출판사 직원의 요구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

사실 ‘하얼빈’은 김 작가가 젊었을 때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이다. 우연히 안중근의 심문 조서를 읽게 되면서 “말 못할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 김 작가는 “인간 사상 밑바닥은 매우 무질서한 것이지만 사상을 배경으로 혁명에 나서는 이들의 몸가짐은 이렇게 가벼운 것이구나. 정말 벌떡 일어서는 것이구나”라며 “이런 것이 혁명의 추동력이고 삶의 열정이라 생각했다”고 집필동기를 전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야 소설이 나오게 된 건 건강이 악화되면서다. 그는 2021년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소설의 방대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일을 미루며 “밥벌이에 열중하다”가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다.

애초 방대한 계획을 구상했지만 육신의 부침을 겪으면서 “덜 만족스럽더라도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필에 몰두했다. 집필을 시작한 건 올해 1월1일. 8개월만에 탈고를 이뤘다. 일본에 가서 이토 (히로부미)의 성장기와 전성기를 모두 취재했지만 관련 내용을 포기하고, 1909년 10월26일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는 전후 짧은 나날에 초점을 맞췄다. “안중근을 영웅시하기보다 그의 청춘과 영혼, 생명력을 묘사”하는데 집중했다. 이토 역시 “죽어 마땅한 쓰레기 캐릭터로 소모”하기보다는 “‘문명개화’와 ‘약육강식’의 양면을 모두 묘사”하려 애썼다.

이번 소설에서 김 작가는 그간 애용하던 3인칭 시점을 버렸다. 그는 이 과정을 “매우 고통스럽다”고 표현하며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다. (3인칭의) 미학적인 표현을 쓸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출간한 에세이 ‘저만치 혼자서’를 거론하며 “에세이를 쓰면서 1인칭으로 쓰는 버릇이 생겼다”며 “문장이 늘어지고 주어가 없어진 느낌이 좀 든다”고 전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론 안중근이 우석순과 블라디보스토크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만나는 대목을 꼽았다. 당시는 이토를 암살하기 열흘 전. “두 젊은이는 이 일(암살)을 왜 해야 하는지, 그런 대의명분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일이 녹록하냐, 아니냐, 거사자금이 충분하냐, 아니냐도 논하지 않았다”며 “고뇌는 무거웠지만 처신은 가벼웠다. 이 대목이 가장 놀랍고, 아름답고, 젊은이다운 에너지가 폭발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힌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는 짧은 말에는 현 시대에 관한 우려를 담았다. 김 작가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지금도 살아있다. 오히려 지금이 더 절망적”이라며 “그 시대 주인공은 망해가는 일본과 서양 제국주의의 먹잇감이었지만 지금은 핵무장한 북한이 중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일본은 또다시 군사대국을 지향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동양평화가 안중근 시대보다 더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토로했다.

작품의 주목할 점과 관련해서는 “문명과 약육강식 그리고 안중근과 (반쯤은 제국주의에 몸을 걸친) 천주교 신부들과의 갈등, 수습, 결말에 공을 많이 들였다”며 “잘 쓴 것 같진 않지만 그걸 주목해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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