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길기자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경기도 용인시 기흥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조상현씨(62·가명)는 지난달 부동산에 주유소를 내놨다. 주변에 골프장 2곳과 대형 쇼핑몰이 인접해 평일에도 차량 통행이 많은 곳이었지만 최근 기름값이 오르면서 손님이 뚝 끊긴 탓이다. 폐업을 하려고 했지만 부지 정화작업에만 2억원 넘게 줘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매매를 결정했는데 한 달 넘게 구입 문의가 없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주유소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자고 나면 뛰는 기름값에 운전자들이 10원이라도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다니면서 주변보다 비싼 주유소는 손님이 끊겼기 때문이다.
비싼 철거비 부담에 휴업한 ‘유령 주유소’도 증가하고 있다. 최대 3억원 가량 되는 폐업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방치해놓는 것이다. 고유가 시기에 비싼 기름을 팔며 ‘배짱 영업’을 하고 있다고 비판을 받지만 일부 주유소들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6일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는 5월 기준 1만1064개를 기록하고 있다. 2017년 1만2594개에서 5년 만에 1530개가 문을 닫았다. 작년에만 213개 주유소가 폐업을 한 데 이어 올들어 5월까지 전국 122개의 주유소가 장사를 접었다.
기름값이 오를 수록 폐업 사례는 비례한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주유업계 관계자는 "기름값에 관심이 높아지면 운전자들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주유소에 몰리는 경향이 많아지는데 불가피하게 주유소 간 출혈 경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며 "인건비나 물류비도 오르게 되고 카드수수료 등을 고려하면 수익 내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유소 임대 매물도 증가추세다. 주유소 임대를 전문으로 하는 중개업소 관계자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는 최근 300평 기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100만원 아래까지 임대료가 떨어졌다"면서 "휴·폐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임대로 돌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익이 낮아지면서 고유가를 틈타 가짜 석유를 불법 유통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한국석유관리원이 지난 3월 15일부터 4월 30일까지 실시한 1차 특별점검에서는 가짜석유를 유통시킨 판매업소 43곳이 적발되기도 했다. 석유관리원은 여름 휴가가 집중되는 8월말까지 전국 주유소를 대상으로 2차 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국제유가 인하나 유류세 인하처럼 기름값을 제때 내리지는 않는다는 불만이 쌓인다. 유류세가 추가 인하된 지난 1일 전국 주유소 10곳 중 6~7곳은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소비자단체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1만976곳 중 지난 1일 휘발유 판매 가격이 전일 대비 변하지 않은 주유소는 6798곳(61.9%)에 달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기존 재고 소진에 따른 시차가 발생하는데 가격 경쟁이 붙으면서 가격을 내릴 것"이라면서도 "국제유가나 세금 등 가격 정보가 대부분 공개된 상황에서 주유소가 폭리를 취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