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35만원, 치료비 15만원'…기초생활수급자들 가계부 들여다보니

최저생계비에 그치는 기초생활수급제 기준
일하면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중위소득 조정, 부양의무제 폐지 등 촉구

[아시아경제 박준이 기자] "월세 35만원, 휴대폰비 5만원, 유선 2만2000원, 치료비 15만원… 남는 돈 40만원으로 한달을 살아가야 한다."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최옥란 20주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올바른 개정을 위한 컨퍼런스'에서 기초생활수급자들의 가계부가 공개됐다. 이들의 가계부에는 월 100~150만원 남짓한 수입 안에서 치료비, 주거비, 기초 생활비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조사 대상자들은 매달 생활비를 제외하고 나면 자금이 빠듯하거나 모자라기 때문에 문화 생활이나 특별한 외출을 거의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조사 결과를 발표한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가계부조사에 참여한 25가구 중 11가구는 수입을 초과해서 지출하며, 소득의 절반 이상을 식비와 주거비로 지출한다"며 "수급가구는 대부분 건강 상의 이유로 일을 하지 못해 수급을 받는데, 이들이 건강한 식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회적 관계가 단절돼 고립되며,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행사는 남인순·신현영·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은주 정의당 의원 및 기초법바로세우기 공동연대가 주최했다.

기초생활수급제도, 어디까지 와 있나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1년 여성장애인이자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고(故) 최옥란 열사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며 목숨을 끊었다. 그는 당시 결의문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여년이 흐른 지금 수급자들의 생활 수준은 제자리다. 물가는 올랐지만 수급비 지급 기준인 중위소득 자체가 낮을 뿐 아니라 지급 조건이 까다로운 탓이다.

이날 컨퍼런스에 모인 활동가들은 생활 속에서 느꼈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차재설씨는 "근로유지형 자활사업에 참여하는데 임금이 너무 적다"며 "그래도 일을 하는 것인데 한 달에 150만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생활하는 것은 버겁다. 일반수급자가 되면 월세를 제외하고 58만원으로 생활을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하면 수급 제외, 발목 잡는 부양의무자 제도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이 되려면 '소득 인정액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소득 인정액 기준은 가구 소득 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 이하를 말하며 생계급여는 30%,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는 46%, 교육급여는 50% 이하여야 한다. 또 부양의무자 기준에 따라서는 1촌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인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자여야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소득액 기준을 초과할 경우 수급 대상에서 탈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낮은 지원금으로 생활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해 소득이 발생할 경우 소득 지원을 받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수급 대상자들은 일을 할 수 있어도 일을 하지 않고, 수급비 내에서 최대한 생계를 유지한다. 차씨는 "일을 조금 해서라도 부족한 수급비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어렵다"며 "일용직 노동을 한 사람이 다녀왔다 하면 고스란히 수급비에서 깎인다. 괜히 일 했다가 수급에서 탈락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부양의무자 조건으로 인해 수급제도 신청 자체가 어렵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적용했지만, 아직까지 기초생활보장제도 급여 중 주거·교육급여에만 적용된 상태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직계가족의 소득, 재산 수준을 증명해야 해 '완화' 수준에 그쳤다. 지난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남긴 과제가 8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홈리스야학에 다니는 섬강(가명)씨는 "조건부 수급 신청을 위해 주민센터에 방문했는데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시점과 연락처를 알고 있는지를 물었고 작년 9월까지 연락했다고 했다"며 "1년 이내에 연락이 되었다는 이유로 수급 신청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꺽쇠(가명)씨도 "일을 쉬어야 하는 시기에 수급 신청을 했지만, 부양의무자 재산과 소득 기준 때문에 탈락했다"며 "엄마의 재산이나 소득은 우리 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가끔 죽었나, 살았나 안부 정도만 전화통화로 하고 있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약자와의 동행' 내건 尹정부, 국회 관심 가져야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생계급여 선정기준을 기준중위소득 35%로 단계적으로 상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수급자 가구 중 노인과 장애인, 아동이 있을 경우 추가급여 10만원을 지급하고, 이를 소득인정액에서 제외하겠다고 했다. 대선 후보로 나섰던 안철수 의원도 대선공약 중 하나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내건 바 있다.

다만 이같은 정책이 현 정부에서 실행될 지는 미지수다. 생계급여의 경우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할 경우 추가 재원 마련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도 개선을 위해선 국회 차원에서의 관심도 요구된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의료급여의 비수급 빈곤층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며 "국회 차원에서 깊이 있게 논의해 통과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도 "기준 중위소득 현실화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합리적 빈곤선을 만들고, 수급자에겐 더 나은 급여를 제공하고, 다양한 삶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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