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기자
새 정부 출범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지만 대다수 국민은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럴 만하다. 보통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곤 희망과 기대가 커지기 마련인데 지금 우리가 처한 대내외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아서다. 미국발 통화긴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봉쇄, 글로벌 공급망 문제 등 곳곳에 지뢰가 널려 있는데 희망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니 말이다. 코로나19발 위기를 근근이 견뎌낸 우리 경제가 여전히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니 착잡하다. 윤석열 정부 1기 경제팀이 이 터널을 어떻게 뚫고 나갈지 궁금하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내각 인선 발표 브리핑에서 낙점 배경으로 강조했던 ‘전문성’과 ‘정무 감각’을 소신껏 발휘하면 된다. 윤 당선인도 각 부처 장관에게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분권형 책임장관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 간단한 해법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최장수 경제부총리’ 기록을 갖게 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만 봐도 그렇다. 홍 부총리는 정치권의 ‘돈 풀기’ 요구에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고 맞서다가도 청와대가 나서면 번번이 백기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선 청와대 방향을 충실히 따르는 아바타(분신)일 뿐이란 비판도 나왔다. 이는 윤 정부 경제팀이 결코 답습해선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윤 정부 1기 내각의 면면을 보면 경제팀이 또 다른 아바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인선대로 내각이 구성되면 경제부총리 출신의 한덕수 국무총리와 기재부 선배 관료 출신의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경제팀의 리더격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위에 있는 구조가 돼 그야말로 여러 명의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험에 비춰볼 때 경제팀 위 군림하는 권력 구조로는 경제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 윤 당선인의 공약대로 청와대는 정책의 조정과 보완의 역할에 한정하고 경제 정책은 최고 책임자인 부총리에게 과감히 위임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추 후보자 역시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경제팀 수장이라고 위상이 함께 오르는 게 아니다. 과감한 추진력과 함께 때에 따라선 대통령이나 여당에 ‘노(NO)’라고 단호히 할 수 있는 강단이 있어야 한다. 홍 부총리처럼 훗날 "반대하긴 했었다"로 회고할 게 아니라면 더욱더 그렇다. 고차원적인 정무적 감각도 필수 요건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소방수로 나섰던 윤증현 전 장관이 그랬다. 그는 취임 첫 해 성장률 전망치와 일자리 수를 마이너스로 수정, 발표하고 추가경정예산 조기 편성과 잡 셰어링 정책 등을 과감히 밀어붙였다. 이 과정서 수차례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설득하고 경제 주체들에게도 동참을 호소했다. 물가안정과 성장이란 상반된 두 축을 모두 잡아야 하는 추 후보자에게 필요한 게 바로 이런 리더십이다.
"유행 앞에선 흐르는 강물처럼, 원칙 앞에선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윤 전 장관이 퇴임사에서 했던 토머스 제퍼슨의 조언을 추 후보자에게 전하고 싶다. 출발선에 서 있는 윤 정부 1기 경제팀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심상찮지만 꼭 성공한 경제팀으로 평가받을 수 있길 바란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