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열기자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현대자동차가 올 여름께 출시키로 한 세단형 전기차 아이오닉6는 아산공장으로 물량이 배정됐다. 그간 주력차종인 쏘나타·그랜저를 만들던 공장으로 최근 전기차 생산을 위한 설비전환을 마쳤다. 전기차 생산을 위한 설비를 갖춘 데다 아이오닉6는 개발 막바지 단계에 왔지만 구체적인 생산시기는 현재로선 미정이다. 새 모델 양산을 위해서는 회사와 노동조합간 생산라인에 배치하는 노동자수를 정하는 ‘맨아워’를 합의해야 하는데 노사간 이견이 크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에 비해 공정이 단순해 투입인력이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앞서 현대차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적용한 첫 모델 아이오닉5를 양산하는 과정에서도 30%가량 인력을 줄이는 맨아워 협의가 늦어지면서 당초 계획한 일정보다 한두달 가량 늦춰진 전례가 있다.
올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친환경차(전기·수소차)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각국의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잇따라 대대적인 투자에 나선 반면 한국은 노조와 각종 정부정책에 발목이 잡혀 있다. 미래차의 양대 축인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에 대한 핵심 기술력이 주요국에 비해 한참 뒤지고 있는 가운데 노조의 저항과 글로벌에 역행하는 정책 등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지난해 11월 광명공장을 전기차 생산기지로 바꾸기로 했지만 현재까지 이렇다할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사가 머리를 맞댔지만 접점을 찾기 쉽지 않아서다. 기아는 앞서 전기차 등 미래 이동수단업체로의 전환을 뜻하는 ‘플랜S’를 2020년 초 발표했다. 광주공장·화성공장에 이어 광명공장을 세번째 전기차 생산공장으로 낙점했다.
기아 노조는 이날 소식지를 통해 "자동차산업 대전환기를 맞아 엔진·변속기 등 파워트레인 부문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며 "공정축소·물량외주화를 위한 플랜S가 아닌 엔진·변속기·소재공장의 미래 고용안정을 위해 국내 공장 내 핵심부품 조기전개를 요구한다"라고 주장했다.
과거 완성차업체가 담당했던 공정이 현대모비스 등 1차협력업체로 넘어가면서 인력감소가 불가피하자 노조에서도 반발하고 나선 모양새다. 사실상 국내 전기차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대차·기아의 이러한 상황을 두고 전문가들은 여유롭게 대처할 처지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중국과 유럽 각국이 일찌감치 전기차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데다 미국·일본 등 그간 웅크렸던 완성차 선진국에서도 잇따라 소매를 걷어붙이며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 세계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이미 전기차로 넘어왔다"며 "이를 받아들일 것이냐는 경쟁력을 넘어 완성차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대차·기아는 물론 국내 생산기반을 갖춘 외국계 완성차회사에서도 한국은 강성노조 인상이 강해 전기차 등 신차물량 배정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며 "전기차·자율주행 등 미래 이동수단과 관련해서도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로 제약이 많아 신생업체가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 덧붙였다.
한국이 노조에 발목을 잡힌 사이 글로벌 주요국들은 전기차를 신 먹거리로 꼽고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모습이다. 가장 전투적인 곳은 중국. 각 국의 전기차 수출액 통계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중국의 전기차 수출액은 85억9600만달러로 독일·벨기에와 함께 단일 국가 기준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중국은 앞서 2020년까지만 해도 전기차 수출 7위 국가, 내연기관을 포함한 전체 승용차 시장에선 10위권 밖에 있었다. 중국의 전기차 수출액은 최근 5년간 연평균 200% 가까이 늘어나며 우리나라나 미국·일본·유럽 등 주요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제조사 기준 지난해 판매량 2위, 4위에 오른 상해기차나 BYD 등이 대표적이다. 4, 5년 전까지만 해도 자국 시장 내 보조금 정책을 등에 업고 10만대 안팎에 머물렀으나 지난해에는 60만대, 30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
미국이나 일본 등 기존 자동차 생산강국도 칼을 벼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포드·제너럴모터스(GM) 등 자국 완성차업체를 직접 찾아 전동화 전략에 힘을 실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전기차의 핵심부품으로 꼽히는 배터리 공급망을 조사하는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연방정부는 물론 각 주정부 차원에서도 배터리 공장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배터리 3사인 LG·SK·삼성이 현지 공장을 새로 짓거나 확충하기로 했고 세계 최대 배터리업체인 중국 CATL 역시 미국 현지 진출을 가늠하고 있다. 세계 최대 메이커 도요타 역시 전동화전략을 발표하며 40조원 이상을 투자키로 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