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2억' 집착, 수십조 놓치는 한국 의사들…의사과학자 시대 온다[과학을읽다]

의학지식·임상 경험에 기초과학·연구개발 능력 갖춰
감염병 대응, 바이오 산업 활성화, 이공계 인재 부족 등에 대안으로 떠올라
주요 국가에선 이미 코로나19 백신 제조 등 바이오산업으로 수십조 대박
노벨생리의학상도 싹쓸이, 정부도 과학기술특성화 대학 중심 전문인력 양성 검토

의사. 이미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수십 년간 답보 상태인 의사과학자 양성에 성공하면 감염병 대처·바이오산업 활성화·이공계 인재 부족 등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등 주기적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감염병 대처, 인구 고령화 등에 따른 바이오 산업 활성 추세에 맞춰 ‘의사과학자’ 양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이 K-방역에는 성공했다지만 정작 백신 개발은 늦어지고 있는 것도 결국 의학과 임상경험, 기초과학 연구 능력 등을 골고루 갖춘 연구개발(R&D) 전문가, 즉 ‘의사과학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학기술이 인류가 처한 위기를 해결할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는 대전환의 시기에서 최우수 인재들이 몽땅 의대에 진학해 개원의 꿈만 꾸고 있는 현실의 대안도 될 수 있다. 

◇의사+연구자=의사과학자

의사과학자는 경력에 따라 기초의사과학자, 임상의사과학자 등 2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아직 정확한 개념은 정의되지 않았지만 의사면허(M.D)를 딴 후 의학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를 ‘의사과학자’로 분류한다. 의생명과학자, 의과학자, 연구의사 등 다양한 명칭으로도 불린다. 정부 부처들도 개념을 제각기 사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문의 또는 박사학위 취득자’를 관련 사업의 지원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주기적으로 환자를 보며 진단 및 치료, 수술 혹은 시술 등에 참여하는 임상 전문의로 정의한다. 교육부는 전문의 자격증을 소지한 의학 석사 학위 취득자 및 졸업 예정자로 박사 과정에 진학한 자를 의사과학자로 본다.

이 같은 의사과학자들은 ‘인간 중심 연구’가 중심이 되고 ‘중개 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백신·신약 개발 등 바이오 R&D의 필수 인재로 떠오르고 있다. 의학적 지식과 임상 경험을 갖추고 기초 과학 및 R&D 경험도 있는 의사과학자는 기초연구의 아이디어를 어떤 환자에게 어떻게 적용할지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연구의 효율성과 개발 속도를 높이는 한편 의료의 질적 향상에도 큰 역할을 한다.

최재영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장은 한 유튜브 방송에서 "기초의학을 하는 박사들보다 의사과학자의 활약이 많아진 이유는 실제로 병원 현장에서 뭐가 필요한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내가 뭘 연구해야 할지를 기초의학자들보다 더 잘 알게 되고 훌륭한 업적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료사진. 기사와 관련이 없음.

◇ 주요국 종횡무진, 한국은 태부족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 인구 고령화에 따른 바이오 산업 활성화에 따라 의사과학자들의 역할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의 개발자이자 바이오엔테크 설립자인 우구르 사힌이 바로 대표적인 의사과학자다. 그는 지난해 20억회분 이상 코로나19 백신을 판매하면서 순익만 100억유로(약 13조4000억원)의 어마어마한 돈방석에 올랐다. 최근 들어 노벨상 수상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2020년 C형 간염 바이러스 발견에 공헌한 공고로 노벨상을 탄 하비 올터(M.D·미국), 마이클 호턴(Ph.D·캐나다), 찰스 라이스(Ph.D·미국) 등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은 국립보건원(NIH)에서 1964년부터 의사과학자 육성프로그램(MSTP)을 운영해 전체 의대생의 4% 규모(전국 43개 대학·연간 170명)에게 장학금·연구비 등을 지원해 최근 15년간 이 프로그램에서만 1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영국도 2015년 ‘MD-PhD 양성계획’을 세워 집중 육성하고 있고, 국립보건연구원(NIHR)을 통해 다양한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일본도 2008년 도쿄 의과대학에 MSTP 과정을 설치하는 등 의료과학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37%, NIH 기관장의 69%, 상위 10개 제약회사의 대표과학책임자(CSO)의 70%가 MD학위가 있는 의사 출신이었다.

반면 한국은 현재 태부족인 상태로 신약·백신 등 바이오 R&D 분야의 질적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우리나라 의대·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은 연간 약 3300명이지만 기초의학 전공자는 30명 정도로 1%에 불과하다. 나중에 석·박사를 따더라도 90%가 임상의로 복귀한다. 이를 위해 그동안 의학전문대학원·연구중심병원 등 제도적 개선 노력이 진행됐지만 실패했다. 의대를 졸업한 후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는 의사과학자를 택하는 의대 졸업생은 ‘희귀종’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지정한 연구중심병원에서조차 의사 중 연구인력의 비율이 평균 36%(2018년 기준)에 그치고 있다.

◇ ‘파괴적 혁신’ 필요

의사과학자 양성에 실패한 원인으론 경제적 현실과 지원책 부족 등에 따른 의사들의 연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문화가 꼽힌다. 일선 현장의 의사들은 경제적 유인책이 부족한 데다 연구 지원 펀딩도 적고, 뜻이 있더라도 임상의들의 경우 연구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연구에 몰두하기 힘들다. 의사과학자가 되더라도 지금으로선 연구비 수주가 어려워서 안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하일 카이스트(KAIST) 의과대학원 원장은 "의사들의 평균 소득이 2억원 정도라면 연구원들은 평균 1억원 정도 받는다고 볼 수 있다"면서 "최소한 1억5000만원 정도라도 주면 연구하는 의사들이 늘어날 수 있다. 의사들 내부에서도 1차 진료의뿐만 아니라 다양한 선택을 장려하는 쪽으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연세대 등 주요 의대들부터 여전히 1차 진료의 양성에만 매달려 있는 상황을 개선해 미국의 스탠퍼드 의대 등처럼 연구 중심 의대로 재편하는 등 전반적인 교과·교육과정 개편 등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 원장은 "100년간 한국의 의료는 엄청나게 도약했지만 임상 진료에만 집중돼 있다"면서 "진정한 의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 등을 따라잡기만 할 것이 아니라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파괴적 혁신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최근 제1회 의사과학자 양성협의회를 개최해 과학기술특성화대학, 즉 기존 연구 문화가 잘 정착된 카이스트나 포항공대에 의과학전문대학원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의과학대학원 프로그램의 확대·지원 강화, 병역특례제도 부여 등의 정책도 거론되고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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