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희기자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문어, 가재도 고통 느끼고 괴로워한다."
최근 영국 정부가 문어와 게, 바닷가재(랍스터) 등을 동물복지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포함해 주목받고 있다. 이 동물들을 먹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척추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므로 인도적인 방식으로 조리해야 한다는 취지다.
영국 정부는 런던정치경제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를 토대로 오징어와 문어가 속한 '두족류'와 게, 바닷가재가 속한 '십각류'를 동물복지법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등뼈가 있는 척추동물 중심으로 논의되던 기존 동물법지법의 적용 대상을 더 확대한 것이다.
CNN 방송 등에 따르면, 런던정치경제대 연구팀은 두족류와 십각류의 지각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300여편의 과학 연구를 검토했다. 그 결과 십각류와 두족류는 다른 무척추동물과 달리 복잡한 중추신경계를 갖고 있으며, 이는 지각 있는 존재의 주요 특징 중 하나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앞으로 영국에서는 문어와 가재 등을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삶거나, 배송하는 행위 등이 금지될 것으로 보인다. 또 요리할 때 전기충격 또는 냉동으로 기절시키는 등 고통 없이 죽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비슷한 법은 이미 스위스와 노르웨이,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도 시행 중이다. 스위스는 지난 2018년 전 세계 최초로 갑각류를 산 채로 요리하는 행위를 금지했으며, 바닷가재를 얼음 위에 올려 운반하는 것도 금지했다. 이를 어길 시에는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노르웨이에선 연어를 절단하기 전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마취한 뒤 전기충격을 가해야 한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2017년 바닷가재의 집게발을 끈으로 고정하고 얼음 위에 올려둔 피렌체의 한 레스토랑에 5000유로(약 670만원) 상당의 벌금을 물리기도 했다. 사람이 살기 위해 동물을 먹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들도 지각이 있는 존재이기에 불필요한 고통을 줘선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동물보호법은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등 척추동물만을 법 적용 대상으로 한다. 두족류, 갑각류 등 무척추동물은 동물보호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무척추동물은 감정이 없고 감각을 느낄 수 없다는 인식 탓이다.
같은 어류일지라도 '식용인지 아닌지'에 따라 법 적용 여부도 달라진다. 실제로 동물단체로부터 '동물 학대'로 고발당했던 강원 화천산천어축제의 경우 "축제에 활용되는 산천어는 애초부터 식용을 목적으로 양식됐다"는 검찰 판단에 따라 동물 학대로 인정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동물권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보호법마저도 인간 중심적인 관점으로 만들어졌다고 지적한다. '식용견'과 '반려견'을 나누는 것처럼, 어떤 동물은 생명이 아닌 마음대로 다뤄도 되는 도구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동물에게 가해지는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강아지, 고양이 등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동물만을 선호하고 또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종차별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한다"며 "여러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통해 문어나 가재도 고통을 느끼고 괴로워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이상 이 동물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물을 대하는 방식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을 경계해야 한다는 인식과도 연결되어 있다. 어떤 대상을 물건 또는 먹거리로 취급하거나 고통을 느끼는 걸 알면서도 그런 행위를 계속하는 것은 학대"라며 "동물을 먹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인도적이고 윤리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