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기자
[아시아경제 김수환 기자] 미국 텍사스주가 지난 1일(현지시간)부터 낙태금지법을 실시한 이후로 미 전역에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이 낙태금지법 시행 중단 가처분신청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48년 전 낙태권을 전면 허용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사실상 뒤집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보수와 진보 진영 간 첨예하게 대립했던 낙태권이 향후 치러질 선거에서 표심을 좌우할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텍사스주의 낙태금지법을 막지 않은 연방대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50년 가까이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따라 보호받은 여성의 헌법적 (낙태) 권리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이라며 "이 법은 성폭행이나 근친상간도 예외도 인정하지 않는 등 너무 극단적"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법률고문실에 법정부적 대응 착수를 지시하기도 했다.
의회의 움직임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하원이 20일 회기에 들어가면 주디 추 의원이 마련한 낙태권 보장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연방 대법원은 1973년 이른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통해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전날 연방대법원은 태아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6주 이후부터 낙태를 금지하는 내용의 텍사스주의 낙태금지법에 대해 5대 4의 판결로 ‘유효’ 결정을 내렸다. 연방대법원은 "이번 결정은 위헌성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지만 과거 판결을 뒤집었다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낙태권 문제로 인한 정치적 후폭풍이 가열되는 모습이다. 미국에서는 낙태권에 대한 입장이 보수와 진보를 가를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며 양측 진영 간 첨예하게 대립해온 문제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낙태권 문제가 선거 의제로도 급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9월 캘리포니아주 주지사 선거와 11월 버지니아주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후보 측은 낙태제한법과 관련해 공화당을 맹공하는 모습이다. 이들 후보가 공화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낙태가 금지될 것이라며 유권자들에게 민주당 후보 지지를 촉구하는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공화당이 장악한 플로리다주 주의회 측은 이날 텍사스주와 유사한 낙태금지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수 진영은 여세를 몰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을 노리고 있다. 낙태권 문제의 운명은 10월 연방대법원의 미시시피주 낙태금지법 위헌성 판결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임신 후 15주째부터 낙태를 금지하는 이 법안에 대해 합헌 판정이 내려질 경우 미 전역에서 낙태제한법을 실시할 근거가 생기며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50여년 만에 낙태권이 다시 제한되는 중대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BBC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궁지에 몰렸다며 "(텍사스주 낙태금지법 허용 결정은) 대법관 다수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하려 한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매체는 이어 "지난 수십년간 낙태 반대를 외쳐온 보수 진영의 승리가 눈앞에 온 셈"이라며 "낙태 금지를 위한 법적 환경이 급속도로 조성될 조짐"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텍사스주에서는 ‘심장 박동법’으로 불리는 낙태금지법을 1일부터 시행했다. 이 법은 태아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6주 이후부터 낙태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임신 6주 차까지는 여성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워 사실상 낙태를 원천봉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수환 기자 ksh205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