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드라마 '좋좋소' 스틸 컷
국내 드라마계에서 오피스물을 주류 장르라고 말하긴 어렵다. 의료인·법조인 등을 주인공으로 한 전문직 드라마가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것과는 비교된다. 일반적인 직장인들 이야기에 법조인 드라마의 범죄 미스터리나 메디컬 드라마의 생사까지 넘나드는 상황 같은 극적 요소를 집어넣기가 어려운 것도 한 이유다. 오피스물은 전문직 드라마의 화려하고 극적인 설정이 아니라 보통사람의 일상에 기반한다. 다시 말해 갈등이 핵심인 드라마에서 평범한 현실로 흥미를 자아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있다.
1990년대 유행한 직장인 드라마는 이런 난제를 러브스토리로 돌파하려 했다. 주인공의 직업은 패션업체·광고기획사·잡지사 등 유행에 민감한 분야로 쏠려 있었다. 회사는 그들의 연애 장소에 가까웠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명예퇴직 같은 노동환경 변화와 직장인들의 애환을 반영한 드라마도 나타났다. 하지만 연애는 여전히 필수 요소였다.
2014년 기존 경향을 뒤엎고 오피스 드라마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등장한다. tvN ‘미생’은 KBS ‘직장의 신’과 더불어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거의 최초의 오피스물이다. 더 나아가 직장 내 괴롭힘, 파벌, 성희롱, 경력단절 여성 등 노동계의 여러 현안을 고루 담아냈다. 러브라인을 배제한 현실적 묘사로 사회적 반향도 불러일으켰다. ‘미생’은 오피스물의 진정한 재미가 직업의 사실적 재현으로 공감하게 만드는 데 있음을 깨닫게 한 계기였다.
드라마 '미생' 스틸 컷
‘미생’ 이후 노동자 현실에 한층 밀착한 드라마가 대거 등장한 가운데 최근 가장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 웹드라마 ‘좋좋소’다. 제목은 ‘좋소 좋소 좋소기업’의 줄임말로 중소기업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비꼼에서 나왔다. 취업에 번번이 실패한 29세 청년 조충범(남현우)의 중소기업 입사 이후 이야기를 그린다. 간단한 스토리, 낯선 배우들, 드라마 연출 경험이 전무한 제작진 등 여러 진입장벽을 지닌 작품이다. 그러나 유튜브에 공개되자마자 열렬한 호응을 얻는다.
‘좋좋소’ 신드롬은 여러모로 ‘미생’과 닮았다. ‘미생’은 기존 오피스 드라마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좋좋소’ 역시 외면받던 중소기업의 조악한 노동조건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5인 미만 사업장이 주된 배경이다. 영세하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의 보호 범위로부터 벗어난 곳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업무 과잉, 인권 탄압 같은 문제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날카롭게 비꼰다.
드라마 '좋좋소' 스틸 컷
극사실주의도 성공 요인이다. 리얼리즘 덕에 호평받은 ‘미생’조차 판타지로 보일 정도다. 제작진과 주변인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든 ‘좋좋소’의 하이퍼리얼리즘은 전체 근로자 중 83%에 이르는 중소기업 직장인들로부터 폭넓은 공감을 얻어냈다. ‘좋좋소’ 공개 채널은 열악한 현실을 공유·고발하는 이들의 공론장이 됐다. ‘미생’이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관한 담론을 이끌어냈듯 ‘좋좋소’는 한층 암울한 노동 사각지대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다시 말하지만 오피스 드라마는 대세 장르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 서민의 삶이 바탕인 만큼 현실을 뒤바꿀 강한 잠재력은 있다. 이를 ‘미생’에 이어 ‘좋좋소’가 증명하고 있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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