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 강국 日 지탱하는 '교세라 그룹' [히든業스토리]

세라믹 소재 1위 기업 '교세라'
"직원 행복, 인류 공헌" 강조한 이나모리 회장
큰 조직 분리, 독립채산제 운영 핵심 '아메바 경영' 창안
창업 후 한번도 적자 없어 '경영의 신'으로 불려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그룹 명예회장./사진=교세라 홈페이지 캡쳐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일본 경제는 자동차 산업과 함께 소재·부품 산업이 지탱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오랜 기간에 걸친 높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국과 더불어 소재·부품 분야의 강국으로 불려 왔다.

특히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인 '교세라 그룹'은 전자기기, 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첨단 세라믹 부품을 만드는 세계 최고의 소재 기업으로 거론된다. 지난 1959년 자본금 300만엔과 직원 28명으로 출발한 교세라는 현재 전 세계 40개국 298개의 계열사를 두고 약 7만5000명의 직원 거느린 세계적 기업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액은 약 16조원에 이른다.

교세라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엔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확고한 경영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교세라는 어떻게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 작은 중소기업에서 세라믹 분야 선두주자로 성장

이나모리 회장은 1932년 일본 가고시마현의 가난한 시골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고시마 대학교 공학부에서 공부한 그는 졸업 후 고압초자를 만드는 회사인 쇼후공업에 취직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이때 처음 전자기기 등 첨단 제품에 쓰이는 고성능 세라믹 부품 연구 개발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러나 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영난에 시달렸고, 아나모리 회장은 결국 이곳을 나와 27세가 되던 해인 1959년 교세라의 전신 '교토세라믹'을 창업한다. 그는 직원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 개발에만 몰두했다. 창업 초기엔 미쓰시타전기에 납품을 하면서 회사의 규모를 조금씩 키워갔다.

교세라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1966년 어렵기로 소문난 IBM 표준에 합격, 대형 컴퓨터 집적회로용기판 2500만개를 수주했다. IBM과의 거래를 계기로 해외뿐 아니라 일본의 대기업으로부터 주문이 급증했고, 미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이 활황기를 맞으면서 회사는 크게 성장했다.

교세라의 사업이 평탄하게만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IBM은 기존의 성능을 훨씬 뛰어넘는 고성능 정밀 제품을 주문했고, 복잡한 사양이 담긴 주문서를 본 경쟁 업체들은 모두 납품을 포기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이를 기회로 삼았다. 그는 주문을 받은 뒤 교세라의 기술력을 총동원해 신기술 개발에 돌입했다. 직접 실험에 뛰어들어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할 만큼 노력을 쏟아부었다. 결국 까다로운 미국 기업에 성공적으로 납품을 마칠 수 있었다.

교세라는 더 나아가 1969년 반도체 칩을 외부 충격이나 습기로부터 보호하는 패키지를 독자 기술로 개발하면서 세계 반도체 시장의 눈길을 끌었다. 그해 교세라는 42%라는 놀라운 수익률을 달성했다.

교세라는 1971년 오사카 증시에 상장했고, 96년엔 소니를 제치고 일본 기업 중 수익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결국 교세라는 수십 년간 첨단 세라믹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며, 창립 이후 59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났다.

교세라에서 제작한 적층 IC 패키지./사진=교세라 홈페이지 캡쳐

◆ "직원이 행복한 기업" 이나모리 회장의 경영철학

교세라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공하게 된 배경엔 '사람을 중시'하는 이나모리 회장의 확고한 경영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이나모리 회장은 '모든 직원이 행복을 달성해나가도록 하는 것'을 경영의 대의로 삼았다.

이나모리 회장은 지난 2005년 출간한 저서 '카르마 경영'에서 "기업의 흥망성쇠는 결국 기업가의 사람됨에 달렸다"며 "이윤을 추구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바른길을 걷겠다는 신념과 철학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아무리 열정과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리더의 가치관이 바르지 않으면 기업과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이나모리 회장은 이른바 '아메바 경영'이라는 그만의 경영법을 만들어냈다. 이나모리 회장은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리더 한 사람의 역량으론 조직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알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의 큰 조직을 작은 조직으로 분리하고 작은 조직에 리더를 임명해 공동 경영의 형태로 회사를 운영하도록 했다.

기술·공정·제품·영업지역 등으로 조직을 나눠 각 조직별로 철저한 독립채산이 운영되는 체제를 구축했다. 그럼으로써 모든 직원이 회사의 이익과 매출, 비용 등을 스스로 인지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집단의 생산성을 한눈에 파악하도록 하면서 조직과 직원이 함께 문제를 개선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경영 철학을 활용해 이나모리 회장은 지난 2010년 파산 직전에 놓인 일본항공(JAL)에 구원투수로 투입, 1년 만에 흑자 전환을 이루는 기적을 이뤄내며 '경영의 신'으로 불리게 됐다. 당시 이나모리 회장은 '월급 받지 않고 일하는 회장'으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일본항공(JAL) 재건을 맡게 된 이나모리 카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사진=연합뉴스

◆ 통신 산업 진출로 제2도약 성공한 교세라

교세라는 오늘날 소재 분야뿐 아니라 전자기기, 정보기기, 태양광 및 전지, 통신 사업 등 다양한 분야로 산업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전기통신 분야로의 확장은 교세라 그룹 사업다각화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나모리 회장은 1984년 KDDI(제2전신전화주식회사)를 설립, 본업인 세라믹 부품 생산과는 전혀 무관한 통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 내 최대 이동통신사는 NTT가 독점하고 있어 통신비가 매우 비쌌는데, 이나모리 회장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독점보다는 경쟁을 통해 통신비가 싸지면 국민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명감으로 시작했다"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한 이유를 밝혔다.

사업 다각화에서도 이나모리 회장은 자신이 항상 강조해온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그것은 '전 직원의 행복 추구와 인류사회 진보 발전에 공헌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이나모리 회장의 이 같은 신념으로 KDDI는 현재 일본 2위의 통신 기업으로 성장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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