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기자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질문하는 학교를 만들겠다. 총장상으로 ‘질문왕상’을 줘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인간과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인재를 키우겠다.”
‘괴짜 교수’로 유명한 이광형 신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의 취임 일성이다. 지난 8일 오후 취임한 그는 늘 남들과 다른 행동과 사고를 추구하는 탓에 TV를 거꾸로 매달아 보고, 신발끈의 색을 양쪽을 달리해 묶고 다닌다고 한다. 단순히 기행이 아니라 고정 관념과 타성을 거부하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북돋아주겠다는 교육 철학 때문이다. 이 덕에 그의 연구실에서는 김정주(넥슨), 김영달(아이디스), 김준환(올라웍스), 신승우(네오위즈) 등 모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만의 도전에 성공한 벤처 창업자들이 배출됐다.
◇‘실패연구소’ 만들겠다
이 총장의 교육 철학은 지난 1월 총장직에 도전하면서 발표한 ‘대학경영 소견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괴짜’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독특한 공약들이 담겨 있다. 이 총장은 자신의 첫 번째 공약으로 ‘질문하는(Question) KAIST’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권위주의에 익숙한 기존 학계 문화와는 결이 다르다. 이 총장은 질문이 KAIST 교육 혁신의 가장 큰 관건이 될 것이라고 본다. KAIST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글로벌 창의 인재를 기르는 것인데, 학생들에게 독서 및 다양한 인턴 생활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여줘 큰 꿈을 꾸도록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질문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특히 재임 기간 동안 총장상으로 학생들에게 질문왕상, 도전왕상을 수여해 이스라엘의 ‘후츠파(담대한 도전과 도발)’ 정신을 가리잡게 할 계획이다.
자율과 창의력을 중요시하는 이 총장의 교육 철학은 ‘실패 연구소’를 만들고, ‘1랩 1최초’ 운동을 벌인다는 공약에서도 나타난다. 이 총장은 남이 연구해 놓은 것을 뒤쫓거나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다름’이 빛을 발하는 교육 분위기를 만들고, 경쟁 연구보다는 최초 연구에 더욱 가치를 두도록 하겠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실패 연구소는 이런 과정에서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도록 ‘교훈을 주는 성공’으로 재해석해 용기를 북돋아 준다. 새롭고 창의적인 연구에 도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한다.
1랩 1최초 운동도 각 연구소들이 최소 1개의 세계 최초 연구 과제를 시도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다. 이 총장은 "남이 정의해 놓은 문제의 답을 찾는 ‘How’ 방식의 연구에서 무엇을 연구해야 할 지 스스로 정의하는 ‘What’ 방식으로 연구를 혁신해야 한다"면서 "유행을 따라서 남들이 따라하는 연구를 하지 않고 그 다음을 찾아 연구하게 장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국제화·융합 교육 선도
‘국제화’와 ‘융합교육’, ‘미래’도 이 총장의 교육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축들이다. 이 총장은 일찍부터 학문간 융합에 눈을 떠 2001년 바이오와 ICT융합을 주장하며 KAIST에서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09년에는 지식재산대학원ㆍ과학저널리즘대학원을, 2013년엔 우리나라 최초의 미래학 연구기관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의 설립을 주도했다. 이 총장은 취임 후 인문 융합과 학과간 경계가 없는 융합 교육, 미술관 설립을 통한 예술적 소양 고양 등의 목표를 갖고 있다. 국제화를 위해 ‘1랩 1외국인 학생 유치’, ‘보스콘ㆍ실리콘밸리에 교수ㆍ학생ㆍ연구원 파견’, ‘해외 국제캠퍼스 구축’ 등의 계획을 갖고 있기도 하다.
주요 1세대 벤처 창업자들의 스승답게 ‘기술 사업화’에 대한 비전도 내비쳤다. 우선 핵심 지식재산의 확보와 활용을 전담할 기술사업화 부서를 민영화한다는 구상이다. 인센티브 기반의 조직 관리로 10년내 연 1000억원의 수입을 낼 수 있는 역동적인 지식재산 관리 체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1랩 1벤처’ 운동, 대전ㆍ오송ㆍ세종을 연결하는 혁신성장 생태계를 육성하기 위한 스타트업 월드 조성 프로젝트 추진도 계획하고 있다.
한국 최고의 연구ㆍ인재 키워냈지만 ‘세계 최초 연구ㆍ최고의 인재’에는 목말라 하는 한국 고등 과학 교육 기관의 수장으로 취임한 괴짜 교수, 그가 4년 후 어떤 결과물을 가져오게 될까. 이 총장은 "괴짜라는 소리가 기분이 나쁠 때도 있었지만 새로운 얘기들을 많이 하니까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해서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4년 임기 동안 질문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큰 인물을 키워내는 교육기관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