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모다이노칩 前대표 주식매수청구권 인정
…"매출 실적 상관없이 500억 지급해야"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 권오일 대명화학 회장이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한 계열사 전 대표 측에 약정대로 500억원가량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권 회장은 M&A 업계에서 '은둔의 경영자' '패션재벌' 등 수식어로 유명한 인물이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재판장 김형철)는 박모 전 모다이노칩 대표 형제가 권 회장을 상대로 낸 주식매매대금 청구소송 1심에서 최근 "권 회장이 박 전 대표와 그 동생에게 각각 428억원, 65억원 및 이자를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권 회장은 모다이노칩을 자회사로 둔 대명화학의 최대주주다.
이번 소송은 양측이 2016년 체결한 '이노칩테크놀로지 주식매수약정'에서 비롯됐다. 그해 대명화학 그룹은 이노칩테크놀로지와 아웃렛 운영업체 모다의 흡수합병을 추진했는데 박 전 대표는 당초 "주식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며 이를 반대했다가 약정이 체결된 뒤 입장을 바꿨다.
합의서엔 '박 전 대표 측이 보유한 주식 164만4232주를 3년 후부터 주당 3만원에 매각할 수 있고, 권 회장은 풋옵션 행사 의사를 통보받은 뒤 3개월 내로 주식매매대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대명화학 그룹은 모다이노칩 등 서너 개의 중간 지주사를 중심으로 300여개 기업에 투자하며 패션·물류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2023년 풋옵션을 행사한 박 전 대표 측은 권 회장이 매수 의무를 이행하지 않자 소송을 냈다. 권 회장 측은 "모다이노칩 전자사업부 매출 5000억원 달성을 전제로 했던 계약"이라며 "2019년 모다이노칩은 오히려 매출이 급감하고, 영업적자를 봤다"고 맞섰다.
1심은 "주식 매매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했다"며 박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우선 재판부는 "계약서에 매출액 달성에 관한 조건이 명시돼 있지 않고, 합의서 초안과 수정안에서도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풋옵션이 주식가치 하락에 대비한 권리란 점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풋옵션은 미래에 주식가치가 하락하는 것과 관계없이 일정한 금액으로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 본질"이라며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내·외부 요인이 많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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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권 회장은 '박 전 대표에게 목표 달성 동기를 부여하려고 약정을 체결했다'고 주장하는데 선뜻 납득이 어렵다"며 "'권 회장이 합병 성사를 위해 풋옵션을 부여한 것'이란 박 전 대표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고 덧붙였다. 권 회장은 1심 판결에 항소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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