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증권사에 코로나 공습…유동성 보릿고개 오나

자산 관리했지만 대형악재에 속수무책
韓銀 무제한 RP 매입에도 위기감 여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승승장구하던 증권업계를 강타했다. 자기자본을 축적하고 유동성 규제에 맞춰 보유 유동성을 관리했지만 검은 백조(블랙스완)처럼 찾아온 시장 충격에 대형 증권사가 부도 직전에 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정부가 한국은행과 국책은행 등을 동원해 전폭적 유동성 지원에 나섰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국면을 이어가면 유동성 고비가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고비를 무사히 넘더라도 투자 손실 등에 따른 실적 저하의 늪이 기다리고 있다.

[아시아경제 임정수 기자, 유현석 기자] 증권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재차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로 시작된 유동성 위기는 정부의 패키지시장 지원책이 나오면서 한숨을 돌리는 듯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유동화기업어음 및 단기사채(ABCPㆍABSTB)를 포함한 증권사 기업어음(CP)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CP시장의 불안이 다시 확대되는 분위기다.

1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단기금융시장은 354조9000억원으로 2018년 대비 17.5% 증가했다. ABCP를 포함한 CP 발행 잔액은 지난해 말 182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4조1000억원 늘었다. 이 중 증권사 CP 잔액이 11조6000억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전년 대비 발행 규모가 4조6000억원 늘었다. 자산 확대 등의 과정에서 자금조달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PF-ABCP도 8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조1000억원 증가했다.

또 금융기관의 단기사채 발행 잔액은 12조9000억원으로 9000억원이 증가했다. 특히 증권사의 단기사채 순발행 잔액은 9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8000억원이 감소했다. 하지만 PF-ABSTB는 증권사 신용공여 확대로 1조9000억원이 늘어난 17조원을 기록했다. 부동산 프로젝트 관련 PF-ABCP와 PF-ABSTB 잔액만 25조원을 넘어선다.

증권사별 유동화 관련 우발채무의 경우 메리츠종금증권(지난해 9월 말 기준)이 8조800억원으로 가장 많다. 하나금융투자가 지난해 말 기준 4조4000억원으로 뒤를 잇는다. KB증권 4조700억원, 한국투자증권 3조9500억원, NH투자증권 3조6200억원, 신한금융투자(지난해 9월 말 기준) 3조5900억원, 삼성증권 3조5100억원, 미래에셋대우 2조8700억원 순이다.

PF 관련 유동화증권은 대부분 3개월 이하 단위로 차환 발행하는 구조로 돼 있다. 하지만 최근 유동성이 막힌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ABCP와 ABSTB 인수를 꺼려 차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투자자가 없으면 매입약정이나 지급보증을 제공한 증권사가 직접 인수하거나 채무를 책임져야 한다. 최근 시장 소화가 이뤄지지 않아 증권사가 직접 매입한 ABCP만 수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업평가는 증권사들 중 유동성갭(유동성 자산-유동성 부채) 대비 우발채무 부담이 큰 곳으로 메리츠종금증권, 하나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교보증권, 유진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을 꼽았다. 특히 메리츠, 하나, 한국 등 3사는 우발채무가 유동성 갭보다 커 유동성 부족(Shortage)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유동화증권 인수를 기피하면서 우량 증권사가 보증하는 A1(SF) 등급의 유동화증권도 시장 소화가 어려운 상태"라며 "일부 시장에서 유통된다 하더라도 평소 2~3배 수준의 높은 금리로 매각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증권사 단기 유동화증권을 유동성 지원 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시장 충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ELS發 유동성 부담 재발 가능성도= ELS로 불거진 유동성 사태 재발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언제 다시 주요 지수들의 변동성이 커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에 조기 상환된 ELS 금액은 2조257억원이다. 지난해 1월 2조785억원 이후 금액 기준으로 최저다. ELS 기초자산으로 활용된 주가들이 급락하면서 조기 상환 조건을 못 채운 ELS가 속출했다.

특히 기초자산가격 추락으로 증권사들의 유동성 위기도 불거졌다. 증권사가 코스피와 해외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ELS를 운용할 때는 위험회피(헤지)를 위해 해당 지수 연계 파생상품 포지션을 취한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주가지수가 일제히 급락하면서 증권사들이 추가 증거금을 내게 된 것이다.

일부 대형사들의 경우 추가 증거금 요청 규모가 1조원 내외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들은 급하게 증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CP를 발행하고 보유 채권을 매각해 긴급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자체 헤지 비중이 높은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등의 대형 증권사의 헤지 부담이 컸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 중 삼성증권의 자체 헤지 규모가 7조2040억원으로 가장 컸다. 이어 한국투자증권(5조6060억원)과 미래에셋대우(3조5420억원)가 뒤를 따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ELS시장의 유동성 위기가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지수 변동성이 커지면서 다시 증권사의 유동성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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