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동성혼' 토론 막은 정부 출연기관…여가부 '위탁' 발 빼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여성가족부가 주최하고 여성가족정책연구원(여정연)이 주관해 28일 열린 '가족 다양성 정책 포럼', 패널 토론에 참여하려 던 한 연구자가 '특정 주제에 대한 내용은 빼라'는 주관기관의 요구에 항의하며 토론에 불참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토론에서 다양한 가족 구성을 위해 건강가정기본법 전면 개정, 생활동반자등록법제정,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삭제, 동성혼 법제화 등 법령 개선책을 논의하려 했다. 그런데 토론회를 앞두고 여정연 관계자가 "한부모, 미혼모, 다문화 가족에만 논의를 집중을 해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사실상 동성혼 부분만 빼고 토론해 달라는 요구였다. 나 위원은 반발했지만 상황이 달라지지 않자 결국 참석을 포기했다.

동성애와 더불어 동성혼 문제는 아직도 의견이 맞서는 민감한 이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밝혔듯 '우리 사회가 합의를 이루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답변처럼 '보다 많은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을 때 합법화가 가능한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대통령의 뜻과는 달리 정부 출연 기관이 나서 동성애에 대한 의사 개진 조차 가로 막는 처사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여가부도 "여정연에 연구를 위탁했을 뿐"이라며 발을 빼는 모습이다. 여가부 해명대로 토론회에서 거론되는 내용이 여가부나 여정연의 공식 입장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토론자의 자유로운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연구자의 발언을 차단한 결정이 과연 여정연 관계자 혼자 행한 일인지도 의문이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측은 "국가가 특정 가족 형태를 부정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모든 개인과 가족이 존중 받고 평등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가부가 인정하고 싶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지, 토론회는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한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던 건지 궁금해진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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