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독서]'세균의 복음', 공중보건이란 이름의 신흥종교 탄생기

파스퇴르가 발견한 세균과 기존 기독교 신앙의 만남거대 신흥종교로 떠오른 '세균학', 인류사 송두리째 바꿔병원균보다 무서운 대중 심리와 공포를 이용하는 상술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최근 미국 전역의 보건당국을 비상사태로 몰아가고 있는 전염병인 홍역은 지난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미국에서 완전 퇴치됐다고 선언했던 질병이다. 뜬금없이 20년 만에 최악의 홍역이 퍼지게 된 이유는 미국에 백신이 부족하거나 세균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이 아닌, 미국 학부모들이 전반적으로 품고 있는 백신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백신을 맞으면 자폐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비과학적 믿음이 홍역대란이란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이처럼 과학적 근거보다는 주로 괴담이나 소문에 따라 쉽게 흔들리는 이 전염병의 아이러니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세균의 복음(The Gospel of Germs)'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며 저자가 만났던 역사상의 각종 에피소드들로 구성돼있다. 제목만 얼핏 보면 세균학의 역사를 써내려간 책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저자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세균 그 자체가 아니다. 세균이 발견된 이후 완전히 뒤바뀐 사회의 모습과 죽음의 공포를 이용해 돈을 벌고 사람들을 억압하는 각종 인간 군상들의 변화하는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저자인 역사학자 낸시 톰스(Nancy Tomes)는 19세기 말 세균학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이 공중보건에 대해 하나의 거대한 '종교'였다고 평가한다. 서구 기독교사회 속에서 수천 년간 이어져온 질병에 대한 원죄설이 세균학이란 과학의 탈을 쓰고 난 이후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꿔왔는지에 대해 상세히 묘사해준다. 간단하게는 손을 씻고 물을 끓여먹는 개인위생부터 크게는 보건정책에 따라 바뀐 도시건설계획과 주택의 형태 변화, 보균이 의심되는 이민자에 대한 격리 수용 등 사회적인 변화까지 훑어나간다.

전 세계 어느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흰색 백자 변기는 세균학의 탄생 이후 강조되기 시작한 위생학에 인테리어 마케팅이 더해져 만들어진 주요한 상품이었다.(사진=게티이미지)

세균에 대해 무지했던 시절에는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은 주로 불결한 환경에 의한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애초 중세시대인 1347년, 전 인구의 30% 이상이 2년 내에 몰살당한 흑사병을 겪었던 서구권에서 질병은 불결, 그리고 원죄라는 믿음이 매우 강하게 형성된 터였다. 이것은 흑사병 대란 이후 500년이 지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부르주아 계급들에게 청결에 대한 매우 심각한 강박관념을 낳았다. 매일 하인들을 닦달해 쓸고 닦고 하루 세 번 이상 목욕하던 이들의 강박증 뒤에는 장티푸스, 결핵, 홍역 등 각종 전염병으로 가족과 친지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상흔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닦아내고 목욕을 하고 불결한 삶을 사는 하층민들과 접촉을 피했음에도 19세기 중엽 상류층들은 너무나 손쉽게 죽어나갔다. 아무리 깔끔을 떨며 하층민을 비웃던 상류층이라 해도 결국 각종 배설물을 쏟아내는 인간임에는 변함이 없었고, 잘못 알려진 상식들로 인해 세균에 감염돼 죽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상류층들은 이 갑작스럽고 어이없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골몰했고, 공포심리 또한 극심해졌다.

이 공포심리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파스퇴르에 의해 발견된 '세균(Germ)'이란 새로운 개념은 종래의 기독교 신앙과 맞물리며 새로운 형태의 종교로 형성돼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눈에 보이지 않게 생명을 회수해가는 신의 징벌로서 여겨지던 전염병의 이미지에 세균이 투영되면서 국가, 사회, 가정 곳곳에 공중보건이란 명목 하에 극심한 변화가 시작된다. 1890년대 파리를 비롯해 수많은 대도시들은 공중보건을 달성하기 위해 도시 재개발에 나선다. 상ㆍ하수도 시설이 새롭게 정비되고 여기서 주로 세균의 숙주로 여겨지던 빈민층들은 도시에서 제거된다.

백신의 보급, 공중위생의 강화, 의료보험체계 등 사회보장제도 내에 들어온 의료보장의 배후에는 19세기 이후 전염병에 대한 상류층의 공포가 숨어있다.(사진=게티이미지)

지배계층은 더 이상 예전처럼 빈민층들을 강제로 밀어낼 필요가 없었다. 청결을 위해 리모델링된 주택, 상하수도 시설과 싱크대, 정수기, 백자형태의 수세식 변기 등 공중보건과 위생법에 맞춘 집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이를 감당할 수 없는 빈민층들은 자연히 대도시에서 밀려났다. 별다른 잡음 없이 계층의 분화와 격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세균뿐이었으며, 이는 이후에도 세균이 담당하는 사회적 역할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의학계와 제약사, 인테리어 업자들을 비롯해 이 새로운 주택혁명에서 큰돈을 번 업계들은 일제히 연합해 세균의 위험성을 광고로 매일 알렸다.

더욱 효과적으로 공포심을 조장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세균의 현미경 사진이었다. 광고업계들은 일부러 세균의 모습을 더욱 혐오스런 곤충처럼 표현하는데 힘썼다. 사람들은 이 벌레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를 박멸하는데 온 힘을 쏟아 부었다. 바닥에 닿던 여성들의 치맛단은 세균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과학적 경고에 따라 꾸준히 짧아졌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귀족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멋들어진 콧수염과 턱수염 역시 세균의 서식지가 될 수 있다는 공포심에 따라 깨끗하게 밀어졌다.

에볼라바이러스의 모습(사진=AP연합뉴스)

그럼에도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 등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전염병을 겪으면서 이제 지배계층은 공중보건이란 복음을 하층민들에게까지 전파하기 시작한다. 이는 새로운 주택보급, 환경미화, 공중의료체계 등이 1920년대부터 갖춰지기 시작한 배경이 된다. 사회보장이라는 제도가 결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선의로만 시작된 것이 아니었음을 저자는 계속해서 들춰낸다. 저자는 이를 일컬어 '병균 사회주의'라 지칭한다.

이후 100여년이 흐른 지금도 새로운 전염병과 세균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심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에이즈ㆍ에볼라 등 바이러스의 이름은 새로워지고 있지만, 늘 과학적 근거나 통계보다는 소문과 괴담이 대중의 심리를 먼저 장악한다. 아무리 전염되지 않는다고 교육을 받아도 에이즈 환자와 밥을 먹는 일은 꺼리고, 맞아야 된다는 백신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기피한다. 예나 지금이나 보건당국이 신경써야할 것은 병원균 그 자체뿐만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무서운 대중들의 심리에 있음을 저자는 그 무엇보다도 강조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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