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대피소, 안내판 없어 외부에서 찾지 못해…강제력 없어 홍보·관리 제대로 안돼
[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23일 오후 2시부터 2시20분까지 을지훈련의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민방공 대피훈련이 실시된다. 하지만 서울 시내의 민방공 대피소들의 관리가 허술해 북한의 공습ㆍ포격 등 유사시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 호텔의 지하 대피소의 경우 호텔 외벽, 로비 어느 곳에도 대피소 안내판은 부착돼 있지 않았다. 호텔 직원에게 대피소 위치를 물었지만 몰랐다. 다른 한 직원의 안내로 겨우 대피소로 향했지만, 가는 도중 내내 안내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지하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서야 안내판을 볼 수 있었다. 호텔 관계자는 "호텔 미관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민방공대피소로 지정된 서울 중구의 한 은행 건물 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피소로 지정된 지하공간을 찾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려 하자 건물 경비원은 "은행영업도 끝났는데 어딜 가느냐"며 제지했다. 민방공 대피소에 들어간다고 하자 경비원은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내일 은행 문을 열면 다시 오라"고 말했다. 만약 은행 영업 시간 이외에 공습ㆍ포격 등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 대피소는 사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거리에 설치된 민방공대피소 안내판. 주위에 나무와 수풀이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본지가 이날 돌아본 10여곳의 서울 시내 민간 대피소들 모두가 안내판이 없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어 사람의 안내 없이는 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대피공간엔 비상시를 대비한 비상식량, 의료장비 등이 구비돼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민방위기본법 제15조에 따라 지하층을 두고 있는 건축물이면 민간건물도 대피소로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관리 규정이 미흡하고 강제력이 없어 민간건물의 대피소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대피소 1만8871곳 중 서울에 3250개가 있다. 이중 면적을 기준으로 85%가 민간건물에 소재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지정한 민방공 대피소들의 대부분이 '관리 부실' 상황인 셈이다.
민방공대피소로 지정된 지하보도로 내려가는 계단에 안내판이 부착돼 있지만 이를 인지하는 시민은 드물었다.
서울 시내 공공 대피소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대피소로 지정돼 있는 명동역을 찾아 역무원에게 묻자 "이곳이 대피소입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비상 상황 대응 매뉴얼이 있냐는 질문에도 "역에서 민방위훈련을 해본 적이 없어 잘 모른다"며 "본사에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답했다. 이어 방문한 다른 두 곳의 지하철역 직원들도 모두 비슷한 답변을 했다.이러다 보니 시민들도 비상시 행동 요령을 잘 모르는 등 유사시에 대한 준비가 거의 돼 있지 않았다. 명동역 6번 출구 앞에서 지인을 기다리고 있던 박모(53)씨는 민방공 경보시 행동요령을 묻자 "떨어지는 미사일을 피하려면 근처 건물로 일단 도망가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지하철 출구에 대피소 안내판이 붙어있음에도 명동역 지하가 대피소라는 사실을 아예 몰랐다. 동대문구 휘경동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고등학생 황모(17)군 역시 아파트 주차장이 대피소라는 사실을 아느냐고 묻자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관리소에서 알려주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아냐"고 되물었다.행안부는 민간건물 소재 대피소의 관리에 대한 한계를 토로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건물에 양해를 구해 대피시설로 지정한 것이기 때문에 강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최근엔 젊은층을 겨냥해 포털광고도 시행했다. 앞으로 대피소 관리, 민방공훈련 홍보에 내실화를 꾀하겠다"고 말했다.한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현직 행안부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민방공 대피훈련에 직접 참여한다. 김 장관은 이날 경기 김포시에서 실시되는 훈련에 참여해 실제 대피시설로 이동, 대피소에서 심폐소생술과 방독면 착용을 시연하고 훈련상황을 체험할 예정이다.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부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