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째 경찰서에 안방 차린 태극기 단체

"대한문 집회신고 사수해 진보집회 열리지 못하게 해야"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생필품 비치하고 두 달째 점거경찰, 민원인들 불편 초래하지만 규정상 강제퇴거 못해 곤혹

자신들을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소속이라 밝힌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남대문경찰서의 민원실을 20일 현재까지 두 달 이상 점거해오고 있다.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서울 시내 한 경찰서 민원실을 보수단체 회원들이 두 달 넘게 점거하면서 경찰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들은 각종 생필품을 가져와 민원실에서 숙식까지 하면서 다른 민원인들에게도 불편을 초래하고 있지만, 현행 규정상 이들을 강제 퇴거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자신들을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소속이라고 밝힌 보수단체 회원들은 지난 5월부터 남대문경찰서 민원실에 3~4명씩 돌아가며 두 달 이상 상주하고 있다. 50~60대인 이들은 침구와 생필품을 구비해 놓고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경찰서 내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는 밤 시간에 사용한다며 선풍기까지 마련했다. 또 민원실 한쪽에는 서랍장을 비치해 화분을 올려놓고 벽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국민교육헌장'을 붙여놓았다.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서울남대문경찰서 민원실을 점거하며 벽에 '국민교육헌장'을 부착했다.

이들은 대한문 앞에서의 집회신고를 먼저 해 진보성향의 집회가 열릴 수 없도록 하기위해 민원실에 머무르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집회 및 시위를 시작하기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까지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보수단체들은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상정이 논의되는 시점부터 이에 반대하는 '태극기집회'를 대한문에서 진행해왔다.20일 남대문서 민원실에서 만난 한 회원은 "좌파들이 (광화문을 넘어) 대한문까지 탈환하고 싶어 한다"며 "이를 못하게 하려고 몇 개월을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이들 민원실 로비 점거에 대해 일반 민원인들은 종종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외부 음식을 반입해 식사를 하면서 냄새가 나고, 테이블을 차지해 다른 민원인들이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울 때도 있다. 또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민원실 내 쓰레기통에 버려 청소노동자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경찰은 이 같은 상황에 속수무책이다. 이들도 명목상 '민원인'이기 때문이다. 민원실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쉴 수 있는데다 '집회신고를 1순위로 하겠다'는 목적을 밝힌 민원인을 내쫓긴 어렵다는 것이다. 특정 일자에 특정 장소에서 집회를 하기 위해 신고자들이 전날부터 경찰서에서 대기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번 경우처럼 특정 집회를 저지하기 위해 민원실에서 지속적으로 대기하는 경우는 흔치않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자는 등 다른 민원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은 제지하고 있지만 사무공간이 아닌 민원실에서 강제로 나가라고 할 수 없다"면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정준영 기자 labri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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