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윤기자
위기의 순간, 기적적으로 이뤄진 '자가수술'을 통해 목숨을 구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인적 힘의 발현과 함께 살기 위한 인간의 간절한 생존본능을 증명하고 있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영화나 소설에서 그려지는 극한의 상황 속 인간의 선택지엔 죽음 또는 극복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극단적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몸을 스스로 가르고 수술에 임한 초월적 인물들의 사례는 과연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구심을 여전히 가능케 하고 있다.미국 독립전쟁 최초의 여성영웅 데보라 샘슨은 전투 중 자신의 몸에 총알이 박힌 상황에서도 혹여나 자신의 성별이 탄로날까 두려워 병원을 떠나 자가수술을 감행한 용감한 여성이었다.
남장여자 군인, 스스로 총알을 빼낸 사연미국 독립전쟁 최초의 여성영웅으로 추앙받는 데보라 샘슨은 어려운 집안 형편을 고려해 스스로 가슴을 천으로 묶고 남장한 뒤 매사추세츠 미들버러에 있는 육군부대에 입대해 스파이로 활동하며 혁혁한 공을 세우던 중 1782년 7월 3일 뉴욕 태리타운 외곽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이마와 허벅지에 총상을 입게 됐다. 이마의 총상은 비교적 쉽게 치료할 수 있었으나 허벅지에 박힌 총알은 꽤 긴 치료를 요했고, 그녀는 입원 중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까 두려워 병원을 떠나 부대 복귀 중 스스로 주머니칼과 재봉 바늘로 허벅지의 총알 2개 중 하나를 제거했으나, 다른 하나는 미처 치료하지 못하고 평생 총알을 품고 살아야 했다. 이후 미국 의회는 그녀가 전투 중 당한 부상으로 수령한 연금을 후손에게도 지급할 수 있게끔 특별법을 통과시켜 독립영웅이자 강인한 여성군인을 위한 예우를 다 했다.당대에 보편적으로 이뤄지던 전신마취의 위험성을 들어 국소마취의 우수성을 주장한 에반 오닐 케인은 스스로 맹장수술 집도에 나서 그 가능성을 몸소 입증해보였다. 사진 = 스스로 맹장수술 집도 중인 에반 오닐 케인
국소마취 우수성 증명하려 스스로 맹장 수술한 의사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활동한 의사 에반 오닐 케인은 독특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의사였다. 수술 중 마취 직전 공포에 떠는 환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축음기로 음악을 틀어 환자의 수술 후 통증을 줄이는 노력을 했는가 하면, 당시 일반적으로 수술 전 이뤄지던 전신마취의 위험성을 주장하며 국소마취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몸소 증명하고자 국소마취를 통한 맹장 수술을 스스로 집도할 것을 계획했고, 4000번에 가까운 환자들의 맹장 수술을 거울로 지켜보며 시뮬레이션을 익힌 끝에 1921년 2월 15일 60세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자가 맹장 수술에 성공하며 주장에 그쳤던 국소마취의 성과를 직접 입증해 보였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0년 뒤인 1932년 70세의 나이로 자신의 사타구니 탈장 수술 또한 스스로 집도해 명실공히 ‘자가수술의 대가’로 의학 역사에 족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