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전 장관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문제원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우리가 모르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김기춘 실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청와대의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정황을 잇따라 폭로해온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6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2014년 7월9일 작심하고 찾아간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들었다는 말이다. 당시 장관이던 그는 모철민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부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라며 각종 불합리한 인사 지시와 일부 문화ㆍ예술계 개인이나 단체의 보조금 지원 중단 요구를 받다가 자니윤을 한국관광공사 감사에 임명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뒤 사의를 표명한 상태였다. 자신이 겪었거나 느낀 문제를 둘러싸고 간언을 할 생각으로 박 전 대통령을 독대했다는 게 유 전 장관의 주장이다. 유 전 장관은 독대 전까지 김 전 실장이 박 전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며 "호가호위 하는 것"으로 의심했다고 한다. 독대 뒤 유 전 장관의 생각은 "이 분(박 전 대통령)도 다 알고 계셨구나"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박 전 대통령은 정말 아무런 반응 없이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대통령이 (제 말을 듣고) 흔들리면 '아, 몰랐던 사실이구나' 하고 알아차리실 거라고 기대했는데 반응이 없었습니다…김 전 실장이 (박 전 대통령 뜻과 무관하게) 호가호위한 것은 아니었구나…확신하게 됐습니다." 일련의 상황이 결국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에서 빚어졌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뜻으로 읽힌다. 유 전 장관은 당시의 독대를 박 전 대통령에게 간언할 마지막 기회로 여겼다고 한다. 유 전 장관은 청와대에 들어가 '문고리 권력'이었다는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만났다. "정호성에게 '시간을 얼마나 줄 수 있느냐'고 하니 뜻밖에 '말씀 하시는 대로 하시라'고 해서 안심하고 대통령과 둘이 앉았습니다.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조목조목 말씀드리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건 이래서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유 전 장관은 당시 ▲부처 실국장 인사에까지 대통령이 관여하는 문제 ▲문화예술계 인사 차별과 지원배제 문제 ▲방송인 자니윤 한국관광공사 감사 임명 문제 등을 언급했다고 한다.
김기춘 전 실장
유 전 장관은 또한 "세월호 참사가 나서 국민들이 굉장히 슬퍼하고 무기력해지고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하나하나 쳐내기 시작하면 나중에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만 남을 것이다. 그 사람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나. 지금 상황은 실망스럽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설명했다. 유 전 장관은 아울러 김 전 실장이 김진선 당시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표적수사해 사임하도록 했다는 정황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했다. 유 전 장관에 따르면 당시 감사원은 김 위원장을 찍어내려는 목적으로 평창올림픽 조직위를 수개월동안 감사했지만 비리 정황을 잡지 못했다. 이에 유 전 장관이 감사원 인사로부터 '목표가 김 위원장이다'라는 말을 듣고 이를 전달하자 김 전 위원장은 스스로 사직 의사를 밝혔다. 김 전 실장은 이 과정에서 유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김 위원장이 사표 낸다고 하는데 빨리 사표를 받아오라"고 했다.유 전 장관은 "김 전 위원장이 '이런 모멸감은 처음이다. 책임있는 사람이 전화라도 해주시면 알아서 나갔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면서 "'동지들 내보낼 때라도 서로 체면을 세워주는 게 좋지 않겠나. 그 이면에 김 실장이 있을 지 모른다'는 말씀을 (박 전 대통령에게) 드렸다"고 말했다.이 말 끝에 박 전 대통령이 '우리가 모르는…' 언급을 했다는 게 유 전 장관의 증언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반응과 태도를 보고) 아, 힘들겠구나, 바뀔 가능성이 안 보이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를 주도하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등을 상대로 정부와 견해를 달리하는 예술인 및 단체에 보조금 중단을 강요하고 박 전 대통령 의사에 반하는 문체부 1급 공무원에 사직을 독촉한 혐의 등으로 김 전 실장을 구속기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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