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한미약품의 계약해지 '늑장 공시' 논란이 일파만파다. 투자자의 피해가 현실화된 가운데 증권가도 일대 혼란에 빠졌다. 계약해지 공시가 나오리라고 예상치 못했던 상당수의 증권사는 한국 제약 업계에 또 한 번의 쾌거라는 취지의 장밋빛 보고서를 내보낸 직후 정반대 보고서를 내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에 봉착했다.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미약품이 장중 악재공시를 내보낸 당일에는 돌발 악재에 대부분 입을 닫았고, 그나마 돌아온 답변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게 전부였다. 한미약품 기술수출 계약해지와 관련한 보고서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개천절이 낀 사흘간의 연휴 직후인 4일 오전. 나흘 전만 해도 호평 일색이었던 보고서는 당혹감과 배신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보고서 제목부터 '투자자신뢰도 하락이 문제' '신약개발의 성장통 하지만 적절한 전달방법은 아니었다' '모두 다 성공하기는 어렵다' 등으로 돌변해 있었다. 특히 목표주가 하향조정 폭이 최대 51만원(122만원→71만원)에 달한 현대증권 보고서는 단연 화제가 됐다. 1건의 돌발 계약해지 공시로 인한 가격 조정이라고 보기에는 극적인 조정 폭을 내놨기 때문이다. 현대증권에 이어 유진투자증권(35만원), 대신증권(30만원), 동부증권(20만원)도 한 번에 수십만 원을 내렸다. 이들 증권사의 목표주가 평균 하향 폭은 20%였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부랴부랴 그간 한미약품의 모든 계약에 대한 실적 기대치를 보수적으로 조정한 결과"라고 설명하면서 회사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걷어낸 점도 일부 반영됐다고 귀띔했다. 새로 맺은 계약(9억1000만달러)과 해지된 계약(7억3000만달러) 규모를 감안하면 그간 목표주가에 거품이 끼어 있었다는 것을 사실상 자인했다는 지적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한미약품 늑장 공시 사건을 두고 일각에서는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한미약품은 한국거래소에, 한국거래소는 한미약품에 책임을 떠넘기는 형국인 데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역시 논란의 중심에서 비껴가기 위해 애쓰는 분위기가 역력한 탓이다. 늑장 공시로 투자자들의 피해를 키운 한미약품과 관리 감독을 맡은 한국거래소의 1차적 책임은 명확하다고 치고, 고평가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간 목표주가 올리기에 급급했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공시를 포함해 증권사 애널리스트 보고서는 투자자들이 정보 비대칭을 해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다. 애널리스트의 '거품' 보고서가 한미약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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