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성기호 기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놓고 갈등을 빚던 여야가 대정부질문 나흘째인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면 충돌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의장석 아래 단상에 올라 "(국무위원들에게) 밥 먹을 시간을 달라"며 의사일정을 방해했고, 이로 인해 40분 가까이 대정부질문이 중단되는 상황을 맞았다. 대정부질문은 정회 끝에 오후 9시에야 재개됐다.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의원들의 항의에 귀기울이고 있다.
충돌은 이날 교육ㆍ사회ㆍ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고의적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에 나선 새누리당 의원들과 정세균 국회의장이 맞서면서 시작됐다. 오후 7시50분께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 10여명이 본회의장 단상 안팎에 난입했고, 정 원내대표와 정 의장 간에 설전이 빚어졌다. 정 원내대표는 "(의장은) 저녁식사를 드셨냐"면서 "(국무위원들도) 김밥이라도 먹을 시간을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나도) 16대부터 일한 4선 의원"이라며 "국회(역사)에 오점을 남기리 말라"고 질타했다. 정 의장도 이에 맞서 "오늘 누구 때문에 이렇게 의사일정이 지연됐느냐. 새누리당이 2시간30분가량 의원총회를 열면서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는 "이치를 따져보라"며 항변했다. 이어 "회의 진행은 의장의 고유 권한"이라며 "내가 책임지고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 (나도) 국무위원들을 걱정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당신이나 걱정하세요" "양심이 있어야지" 등 막말을 주고받았다. 의원석에선 야유가 쏟아졌다. 정 의장은 결국 교대로 국무위원들이 돌아가며 식사할 것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태는 대정부질문이 중단된지 36분만인 오후 8시26분께 일단락됐다. 여야 3당 원내대표가 향후 의사진행 일정을 논의하기로 하고, 정 의장은 정회를 선언했다. '막장 충돌'은 표면적으론 정 원내대표가 국무위원들의 식사·휴식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빚어졌다. 하지만 충돌의 배경에는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저지하기 위한 새누리당의 전략이 깔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질의에 나선 새누리당 의원들은 되도록 질의·응답 시간을 늘리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드러넀다.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무려 55분간 질의ㆍ응답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답변에 나선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 등 국무위원들의 발언시간까지 늘어나면서, 야당 의원들 사이에선 정부와 여당이 공조한 일종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란 지적이 흘러나왔다. 법적으로 필리버스터는 의원만 할 수 있지만 여당의 묵인 아래 국무위원들까지 이에 동조했다는 주장이다. 국회법상 대정문질문 질의시간은 의원에게만 15분으로 제한된다. 국무위원의 답변에는 시간 제한이 없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국회의장실에서 정세균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회동 중 먼저 자리를 떠나고 있다.
앞서 본회의 개회 직전 정 의장은 "해임건의안은 국회법 따라 오늘 본회의에 상정해야 한다"면서 여야 간 협의를 요청했다. 대정부 질문 마지막 날인 이날까지 처리하지 않으면 무효화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반면 여당은 이날 하루 지속적으로 의사일정을 지연시켰다. 이날 오전 10시에 예정된 본회의가 오후 2시로 미뤄졌지만 여당 의원들은 1시간 가까이 지나서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오후 2시부터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야당의 김재수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놓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 때문이다. 이후에도 일부 의원만 자리를 지키면서 본회의장 곳곳에 빈자리가 속출했다.의사 일정이 지체될수록 , 이날 예정된 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처리도 미뤄졌다. 지난 22일 오전 10시3분 본회의에 보고된 해임건의안은 보고 후 24시간 이후부터 72시간 이내에 무기명 투표로 표결해야 한다. 25일 오전 10시3분이 마지노선이다. 처리요건은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이다. 하지만 정 의장이 해임건의안 처리가 대정부질문 마지막 날인 이날까지 처리돼야 한다고 못박으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주말에는 본회의를 열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다. 실제 마지노선이 이날 자정까지로 앞당겨진 셈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수차례 의총을 반복하면서 전략 점검을 되풀이했다. 결국 오후에는 응답에 나선 국무위원들에게 식사시간을 달라며 한때 의장석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태로 발전했다. 이는 '여소야대'로 바뀐 20대 국회에서의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129석만 확보하고 있다. 전원이 출석해 반대표를 던진다고 해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121명)과 정의당(6명), 무소속(6명)이 전략투표에 나서면 과반인 151석에 18석 차이로 접근한다. 여기에 자유투표 방침을 정한 국민의당 의원 38명 가운데 18명만 찬성표를 던지면 해임안은 무난히 통과된다. 내부적으로 해임안에 대해 반대 의견이 있었던 국민의당에선 이날 한때 강경 기류가 팽배해지면서 20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질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 국회 해임건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이를 다시 박근혜 대통령이 무시할 경우 여야 대치는 피할 수 없게 된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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