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 편집기자 출신 손현주 사진작가, '섬으로 가는 길' 특별전
"순환의 마지막 기점"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서사 담아내
손현주 작가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백사와 자갈을 지나면 10m짜리 거대한 '붉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장엄한 바다를 목도하며 섬의 비밀을 풀어놓지만, 관람객들은 그 바다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것이다. 아름답지만 응어리진 개인의 바다를…."충남 태안 안면도에 살면서 섬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을 해온 손현주 사진작가(51)의 해설노트 속 한 구절이다. 사진이라기보다는 회화에 가까운 작품들을 선보인 그가 더 깊고 넓어진 섬의 세계를 품고 관람객들을 만난다. 작가는 내달 9~25일 천안 예술의전당 1, 2관에서 특별전 '섬으로 가는 길(Odyssey in Anmyeondo)'을 연다. 사진ㆍ영상 및 설치미술 등 총 200여점을 내건 대규모 전시회로, '바다로 통하는 비밀의 문'이 수수께끼처럼 펼쳐진다.손 작가는 22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섬 안면도는 나를 연결하는 삶과 예술, 시간의 연대를 잇는 태반 같은 곳"이라면서 "섬을 매개로 관객과 손을 잡고 같이 호흡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호흡이란 작품 앞에 선 관객 스스로가 온전히 느끼는 것으로, 관객은 작가가 막연히 풀어놓는 섬 이야기를 관찰하면서 이상향이나 욕구, 현실의 벽 등 다양한 감정을 마주한다. 작품의 주요 모티브인 섬과 작가의 인연은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 작가는 1965년 안면도에서 한학자의 딸로 태어났다. 그는 "조상 대대로 섬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몸속에 섬 유전자가 흐르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19살 때까지 섬에서 살다 객지로 나왔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신문방송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20년간 일간지 편집기자로 일했다. 그러다 2010년 돌연 사직서를 내고 고향 안면도로 돌아갔다. 섬을 떠난 지 꼭 30년 만의 일이다.손 작가는 "섹션 담당 편집부장을 할 때였는데 어느 날 출근하니 책상에 앉기 싫었다"면서 "여행을 다녀오면 괜찮을까 싶어 휴가를 내고 제주도로 떠나 일주일간 나 홀로 올레길 배낭여행을 했다"고 말했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섬 길을 비까지 맞으면서 일주일간 걸은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싱숭생숭한 마음을 잡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그는 "무엇을 해야겠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붉은 바다' 연작
섬으로 돌아온 그 해 가을, 손 작가는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섬을 일주하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뒤로 물러서 마을로 올라가고, 다시 갯벌과 바위, 백사장을 넘으면서 꼬박 보름을 채워 섬을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사진전공자도 아닌 그가 툭툭 눌러 찍은 카메라 속 이미지들은 어쩐 일인지 모두 섬 쓰레기만 가득했다. 작가는 이를 두고 "아름다운 안면도의 모습은 오간데 없이 부표와 텔레비전, 병조각, 폐선 등 '삶의 궁상'들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이후 그는 해안가를 돌며 바다 풍경과 섬 쓰레기 사진을 찍었다. 순환의 마지막 기점에서 만나는 스티로폼 부표와 텔레비전, 저울, 신발, 그릇 등 일상의 쓰레기들에서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인문학적 서사를 담아냈다. 바닷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텔레비전에서 바다와 근접한 외갓집의 어느 여름밤이 떠올랐고, 폐선에서는 배가 뒤집혀 마을주민 10여명을 앗아간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아버지 눈빛이 떠올랐다고 했다.더러운 골칫덩어리에 불과한 쓰레기들은 작가의 카메라에 담기면서 이야기를 지닌 생명체로 재탄생했다. 특히 촬영이 끝난 쓰레기들을 설치작품 오브제로 활용해 또 한 번 순환의 경계를 넘어선다. 이 때문에 작가는 '사람과 자연의 경계에서 우주의 순환을 노래하는 섬 아티스트' 혹은 '포토그래픽 아티스트(photographic artist)'라고 불린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대형 연작 '붉은 바다'를 비롯해 부표 설치물, 영상작품 '집으로 가는 길' 등을 주요 볼거리로 내놨다. 그는 "섬이라는 공간의 고립성과 협소성, 자연생태계에서 자연의 근원을 느끼고 영감을 얻는다"면서 "이번 전시가 관객들이 직접 느끼고 치유 받을 수 있는 '힐링 섬'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손 작가는 2014년 런던에서 열린 첫 개인전 '섬은 부표다(The Island is a Buoy)'를 시작으로 2015년 서울 두산갤러리에서 특별전 '안면도 오디세이'(Odyssey in Anmyeondo)'를 열었다. 저서로는 '사랑이 파리를 맛있게 했다(2016, 아트북스)' '계절밥상여행(2012, 아트북스)' 등이 있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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