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습격 - 독특한 신조어 만들어내, 횟수 거듭하는 경연 묘미 강조하면서 유행어로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역대(歷代)는 정기적인 기간이나 형식으로 진행되어온 무엇의 횟수가 음미할 만하게 쌓였을 경우, '매회마다 따졌을 때'를 의미한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지나온 대(代)'이다. '조선의 역대 왕들' '역대 조상들' 따위로 쓴다. 그 대(代)를 통틀어 가장 크거나 높거나 강한 것을 말할 때, 종전에는 '역대최대' '역대최고'('역대최상') '역대최강' 따위의 표현을 써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역대급'이란 말이 등장해, 그 모든 관용적 문구들을 덮어버렸다.'급(級)'은 우열이나 상하의 어떤 자리(등위)를 가리키는 말인데, 등급이나 계급 따위에 붙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이 '역대'와 결합할 때는, 그것이 크기인지 높이인지, 강도인지를 표현하는 말과 같이 붙어서 그 위치를 강조하는 말로 쓰였다. 예를 들면 역대 최상급, 역대 최대급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표현 속에서 생략해서는 안될 '최(最, 가장)'란 말이 빠지고, '역대급'이란 말이 출현해 유행어가 된 것이다. 그 말뜻으로만 보자면, '대대로 등급'이다. 의미상 알맹이 빠진 말인데도 워낙 빠르게 전파되니 따질 겨를도 없이 입에 익숙한 말이 되었다.
이 말은 2013년경부터 방송에서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경연프로그램이 활발해지면서 횟수를 거듭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조어'가 아닐까 싶다. 경연프로그램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자아내기 위해, 정교한 목표로 이 이상한 말을 고안해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k팝스타나, 슈퍼스타k, 히든싱어, 복면가왕 등의 기사에는 역대급이란 말이 단골처럼 등장했고 그같은 표현이 있는 보도자료들이 잘 먹혀 기사화에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언어 유희로 선정성을 높인 셈이다.역대급은 경연프로의 반복성을 강조하고 점증하는 기대감을 높이면서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하려는, 방송의 '개념 남용' 혹은 '개념 오용'이다. 방송의 설레발이, 신문에 그대로 실렸고, 그것을 독자와 시청자들이 섭취한 결과, 대한민국에는 '역대급'이란 말이, 아무런 제동도 반성도 없이 마구 번져나간 것이다.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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