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상황시 탑승자와 보행자 중 누구의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가차량제조사의 책임 문제도 논란소비자의 구매결정 영향에 결정적윤리적 딜레마·책임소재 명확해야제도정비 없인 산업발전도 공회전
그래픽= 이주룡 기자 ljr@
[아시아경제 송화정 기자]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운전자는 차에 운전을 맡긴 채 편안히 주행을 즐기고 있다. 갑자기 차 앞쪽으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뛰어든다. 차 앞으로 뛰어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왼쪽으로 돌리면 차가 벽을 들이받아 운전자가 위험하게 되고 오른쪽으로 틀면 다른 보행자를 들이받게 된다. 자율주행차는 어떻게 해야 하나.자율주행차 시대가 다가오면서 자율주행에 따른 윤리적 딜레마가 문제로 떠올랐다. 기계는 인간이 설계한 대로 작동하기 때문에 인간과 같은 감정이 없으며 인간과 같이 옳고 그름을 따져 생각하지 않는다.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돌발상황에 기계는 단지 인간이 입력한 대처방법에 따라서만 움직이게 될 것이다. 이는 인간의 윤리적 판단에 위배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율주행차가 던진 난제 '윤리'= 프랑스 툴루즈경제대 장 프랑수아 보네퐁 교수는 지난해 무인차의 윤리적인 딜레마 문제에 대한 연구 결과를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게재했다. 그는 무인차가 앞쪽 보행자를 피하려고 방향을 바꾸면 다른 보행차를 치거나 탑승자가 희생되는 상황을 가정해 4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들은 대체로 희생자를 최소화하도록 무인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보행자 10명을 피해 방향을 틀 경우 벽에 부딪혀 탑승자가 사망하는 경우에 대해 대부분의 응답자는 보행자 10명을 살려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탑승자가 본인일 경우에는 이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 운전자를 희생하고 다수를 살리도록 설계된 무인차에 타고 싶어하지 않은 것이다.
구글 직원이 무인차를 시험운행하고 있다.
보행자를 보호하도록 자율주행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보편적인 인식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설계돼 운전자가 다칠 수 있는 자율주행차를 사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재용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 소장은 "실제로는 자율주행차가 그런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설계가 돼 있다"면서 "자율주행차는 교통법규를 지키면서 최대한 보행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운행을 하도록 명령을 받는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자율주행 기술은 차 앞에 절대 약자일 수밖에 없는 보행자를 보호하는 한편, 탑승자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차체의 안전기술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자율주행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선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임태원 현대기아차 중앙연구소장은 "자율주행 기술이 완벽하게 구현됐다 하더라도 위급 상황에 대한 기술적 판단이 인간의 윤리적 기준에 부합되지 않아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면서 "전방 충돌을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방 보행자를 피해 탑승자에 피해를 줄 것인지 아니면 다수의 보행자에 피해를 주더라도 탑승자의 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판단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와 사회 수용 가능한 결론 도출에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자율주행차, 책임의 문제= 극단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율주행은 여전히 쉽게 풀 수 없는 문제를 인류 앞에 던져 놓고 있다. 바로 책임의 문제다. 그 동안에는 차를 작동시키는 운전자에만 사고 발생에 따른 책임이 있었지만 자율주행으로 운전자가 차 운행에 개입하는 정도가 달라지면서 차량 제조사에 대한 책임 범위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구글 무인차 사고에 대해 구글은 "우리 차가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고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사고 당시 렉서스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개조한 무인차는 도로에 떨어진 모래주머니를 피하기 위해 차선을 바꾸는 과정에서 뒤따라오던 버스와 충돌했다. 무인차는 버스가 속도를 줄이거나 길을 양보할 것이라고 판단했으나 버스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면서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자율주행차 설문조사.
현행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은 '자기를 위해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가 다른 사람을 사망 또는 부상하게 한 경우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자동차의 구조상 결함이나 기능상 장해가 있으면 면책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차마다 거의 탑재돼 있는 '주차 조향보조 시스템'의 경우 주차 가능 공간을 분석해 스스로 주차해준다. 이 자동 주차 시스템을 이용해 주차를 하다 옆의 차를 긁는 등 사고가 발생할 경우 현행법상 그 책임은 운전자가 지게 된다. 만약 시스템상의 오류로 사고가 발생했다면 운전자가 직접 이를 입증해야 한다. 자율주행차라 해도 '자기를 위해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운전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다면 운전자가 면책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제조사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가천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최근 법무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제출한 '신기술과 창조경제를 지원하는 법제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율주행차의 프로그램이 해킹당하는 등 운전자가 예측할 수 없는 결함이 생겨 운전권한이 해커 등 제3자의 지배를 받는 경우에는 자동차의 구조상 결함이나 기능상 장해 여부를 따져 제조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현행법은 소비자에게 결함의 입증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데 소비자가 복잡한 자율주행차의 기술적 결함을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리 문제와 책임 소재의 불명확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국 소비자들은 자율주행차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으며 사고시 운전하지 않았는데도 배상책임은 전적으로 운전자가 져야 한다면 비싼 가격의 자율주행차를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박재용 소장은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법규가 이를 따르지 못해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자율주행에 대한 법적 제도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들여 자율주행차를 만들어도 팔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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