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div class="break_mod">‘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가족 없이 홀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은 편안하게 묻히지도 못하고 ‘해부용 시체’ 신세로 전락한다? 황당한 주장으로 들릴 수도 있다. ‘1인 가구’가 보편화한 세상에서 다양한 이유로 가족과 단절된 이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편안하게 잠들 수 없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문제는 터무니없는 얘기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시체 해부 및 보전에 관한 법률’ 제12조를 둘러싼 비밀이다. 해당 조항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특별자치시장, 특별자치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은 인수자가 없는 시체가 발생했을 때는 지체 없이 그 시체의 부패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고 의과대학의 장에게 통지해야 하며, 의과대학의 장이 의학의 교육 또는 연구를 위해 제공할 것을 요청할 때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그 요청에 따라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무연고 시신이 발생하면 의과대학장에게 이를 알리고 연구용(시체해부용)으로 제공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고려할 수 있다’는 내용도 아니고 ‘해야 한다’라는 의무가 담긴 조항이다. 이러한 법률이 존재했던 것은 과거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을 둘러싼 ‘슬픈 사연’과 관련이 있다. 의과대 해부학 실습은 일본 강점기 전후로 해서 경제적 빈곤 등의 이유로 길거리에서 죽은 행려 사망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후에도 해부용 시체 확보는 대부분 행려병자나 무연고 시체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자 관련 법률이 만들어졌다. 1962년 2월 시체해부보존법이 제정됐고, 2012년까지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핵심 내용은 큰 변화가 없었다. 가족도 없고 찾는 사람도 없는 ‘무연고 시신’은 의과대학이 원할 경우 해부용 시체로 활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강제 조항이 법률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여러 사연에 따라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경우 비극적인 삶의 마무리를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아픈 사연’을 지닌 한 여성이 용기를 내서 법에 호소했다. 1962년생 미혼 여성인 A씨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루푸스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세상을 떠났고 형제들과도 30여년간 연락이 두절돼 사실상 연고가 없는 사람이다.
A씨는 2012년 5월 언론보도를 통해 ‘시체해부보존법’의 내용을 알게 됐다. A씨는 해당 법률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국선대리인을 통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1962년 제정돼 지금까지 존재하는 ‘시체해부보존법’은 운명의 순간을 맞이했다. 헌법재판소는 11월26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국민 보건 향상이나 의학교육 등 공익적인 목적이 있더라도 사후 자신의 시체가 해부용으로 제공되는 과정에서 ‘자기결정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판단이다. 세상은 변하고 법도 그것에 맞게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과거처럼 무연고 시신에 의존해 해부실습을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시신 기증’의 방법으로 의과대학이 필요로 하는 해부용 시체를 확보하고 있다. 헌재는 “최근 5년간 (시체해부보존법에 따라) 해부용 시체를 제공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의과대학 해부용 시체로 활용되는 사례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관련 법률의 문제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헌재가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제 관련 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헌재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본인이 해부용 시체로 제공되는 것에 반대하는 의사표시를 명시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면서 위헌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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