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기금을 마련해 젊은층의 일자리 창출에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모금을 시작한 청년희망펀드가 기업들의 팔목을 비틀어 억지로 걷는 모양새가 되면서 그 의미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기업들에게 모금액을 강제할당하고 있다며 '준(準) 조세'식 성금으로 변질됐다는 말까지 나온다.청년희망펀드는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실업을 해소하자"며 개인 재산 2000만원과 월급의 20%를 매월 기부하기로 하며 '기부 1호자'로 이름을 올린 이후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청년희망펀드 출범 당시엔 사회 지도층, 공직자, 일반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기금을 마련한다는 취지였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정부가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하면서 잡음이 새나오고 있다.실제 정부는 지난달 청년희망펀드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기업에 기부액 규모와 참여 시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금 액수는 5대 그룹에 750억원, 금융권에 500억원이 할당됐고 개별 기업들과의 연락은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맡았다고 한다.공교롭게 기업들의 청년희망펀드 사재 출연은 지난달 22일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의 기부로 시작됐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이지만 평소 그의 뜻에 따라 포괄적 위임을 받아 놓은 개인 재산 200억원과 임원진 50억원 등 총 250억원을 기탁했다. 이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임원진이 200억원,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임원진이 100억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임원진이 100억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임원진이 100억원 등 약속이라도 한 듯 기업들은 재계 순위에 맞춰 기부금을 내놓았다. 이들 5대 그룹이 내놓은 기부액만 750억원에 이른다. 이어 GS(50억원), 포스코(40억원), 한진(30억원), 한화(40억원), 두산(35억원), 효성(20억원), 코오롱(12억원) 등도 기업 규모에 맞춰 기금 행렬에 동참했다. 사전 각본에 따른 듯한 기부 행렬로 인해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준조세 납부'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9월 "삼성에 2000억원을 내라고 하고 기업에 돈을 내라고 하면 1조원을 모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할 경우 기업이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노력에 제한이 된다"며 기업 기부는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기부를 강요하면서 '기업 돈은 받지 않겠다'던 정부의 공언은 이제 말 그대로 '빈말'이 돼버렸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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