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아픈 성인式…달라진 날좀 보소

작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조직위 조사받고 지원금 줄어…이참에 내실있게 독립하겠다

영화 '주바안' 스틸 컷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지난해 극장 입장권 매출액은 1조6641억원. 역대 최다액이지만 영화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배급과 상영을 함께 운영하는 대기업의 독과점 때문에 많은 작품이 개봉조차 못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3대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이 92%(2098개)를 차지한다. 대중성을 우선하다보니 제작 환경은 열악해졌다. 관객의 선택 폭도 줄었다.부산국제영화제는 오아시스와 같다. 지난 19년 동안 국내외 다양한 영화들을 소개하며 관객 289만8470명을 동원했다. 442편의 제작도 지원했는데 200여 편은 영화로 완성됐다.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부산은 '영화의 도시'가 됐다. 먼저 출발한 도쿄(1985년)와 홍콩(1977년)의 영화제가 정치적, 상업적 이유로 힘을 잃자 명실공히 아시아권 최대 영화축제지로 부상했다.위상은 올해도 변함이 없다. 지난 1일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화려하게 시작했다. 오는 10일까지 해운대 메가박스, 센텀시티 롯데시네마, 남포동 부산극장 등 여섯 극장 마흔한 개 스크린에서 관객을 맞는다. 상영작은 일흔다섯 나라 304편. 지난해보다 열 편 줄었다.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프리미어 작품도 121편으로 전년 대비 열세 편 감소했다. 성년을 기념하는 잔치에서 허리띠를 졸라맨 셈이다.

영화 '산이 울다' 스틸 컷

지난해 '최대 주주'인 부산시의 우려에도 세월호 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하면서 운영은 차질을 빚었다. 부산시의 지도점검에서 조직위원회의 주먹구구식 관행이 도마에 올랐고, 지난 4월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이 절반으로 줄었다. 선정된 작품마저 상임집행위원회를 거치게 돼 독립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벼랑 끝에 몰린 조직위는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베테랑'의 서도철(황정민) 형사라도 된 것 마냥 "'가오(허세)'를 잃지 않고 작품을 골랐다"고 했다. 20회의 감회를 잊은 지는 오래. 올해를 체질개선의 기회로 삼고 독립성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강수연(49) 공동집행위원장은 "우리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앞으로 20년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만 고민하겠다"고 했다. 이용관(60) 공동집행위원장은 "내실을 다져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거장과 중진, 신진 감독들의 신작, 고전을 고르게 준비한 조직위는 그 첫 발을 상쾌하게 뗐다. 개막작인 인도 모제즈 싱 감독의 '주바안'이 매진사례 속에 관객들의 큰 호응을 이끌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성공을 꿈꾸던 청년이 성공의 문턱에 이르지만 삶의 가치에 회의를 느낀다는 내용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폐막작은 중국 래리 양(34) 감독의 '산이 울다'다. 2005년 노신문학상 수상작인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남편을 사고로 잃은 청각장애인과 그를 보살피게 된 남자, 둘을 둘러싼 마을사람들의 갈등을 다룬다. 지아장커(45) 감독이 자신의 청년시절을 다룬 '산하고인', 마약 전쟁을 소재로 한 드니 빌뇌브(48) 감독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올해 칸영화제 각본상에 빛나는 미셸 프랑코(36) 감독의 '크로닉' 등도 프로그래머들이 추천을 아끼지 않는 작품들이다.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스틸 컷

2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마련한 '아시아 영화 100'도 눈여겨볼만하다. 조직위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 세계 감독, 평론가, 영화학자 등 일흔세 명의 의견을 반영해 100편을 선정했다. 영화제에서는 리마스터링 작업이 한창인 '화양연화'를 제외한 10위권 작품 아홉 편이 상영된다. 일본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인도 사티아지트 레이 감독의 '아푸 제2부-아파라지토' 등이다. 한국영화로는 경쟁 부문인 '뉴 커런츠'에 합류한 정성일(56) 감독의 '천당의 밤과 안개'가 눈에 띈다. 중국 왕빙(48) 다큐멘터리 감독의 촬영장을 찾아 다큐멘터리와 극 형태를 섞어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상영시간이 네 시간에 이른다.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을 통해 선보이는 '눈꺼풀'도 빼놓을 수 없다. 제주 4.3 항쟁 영화 '지슬'로 주목받은 오멸(44) 감독의 복귀 작품으로 거제도에서 떡집을 하는 노인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다.

영화 '지슬' 스틸 컷

어느 해보다 많이 참가한 해외 스타들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라붐'의 소피 마르소(49)를 비롯해 '설국열차'의 틸다 스윈튼(55), '비열한 거리'의 하비 케이틀(76), '테스'의 나스타샤 킨스키(54), '만추'의 탕웨이(36) 등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성년식을 축하한다. 김지석(55) 수석프로그래머는 "스타들을 초청할 예산은 줄었지만 영화제의 2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적잖은 스타들이 자비로 부산을 찾았다"고 했다. 한국 배우로는 이정재(42), 유아인(29), 전도연(42) 등이 관객 앞에서 인터뷰를 한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은심(80)도 오랜만에 고국을 찾아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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