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눈물과 '잊혀진 파독광부들'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1962년 10월 서독(옛날 독일) 정부는 한국 정부에 1억5000만마르크의 차관을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5·16쿠데타 이후 경제 성장의 마중물이 필요했던 박정희 정부에 가뭄 끝 단비와도 같은 돈이었다. 하지만 차관 도입은 난관에 부딪쳤다. 서독이 차관을 제공하면 제3국 은행의 지급 보증이 필요했지만 어떤 은행도 한국 정부가 빚을 못 갚았을 경우 대신 갚아주겠다는 약속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당시 한국 정부가 내놓은 담보는 '사람'이었다. 한국 정부는 독일에 부족한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고 이들의 임금을 담보로 독일 은행의 지급보증을 얻어냈다. 이같은 나라의 필요와 해외 나가 돈을 벌면 보다 지긋한 가난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수천명의 남녀가 파독광부, 파독간호사의 이름을 얻어 고국을 떠나 독일로 향했다. 고국을 위해 떠난 이들을 당시 정부는 잊지 않았다. 파독광부와 간호사를 위로하기 위해 1964년 12월 독일 루르 지방의 함보른 광산을 찾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 이룩하지는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나도 열심히 하겠....." 박 대통령은 현장에 있던 광부와 간호사들과 함께 우느라 연설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이어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라고 말했다.그러나 나라와 가족을 위해 독일로 떠난 사람들의 삶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은 않았다.부모, 형제, 자매 등 가족들에게 송금을 했지만 일부는 결국 가족들과 멀어지게 됐다. 벌어둔 돈을 가족들에게 송금하다보니 수중에 남겨둔 돈이 없는 경제적 약자로 전락했다. 고향에 사놨다던 집은 동생, 형 명의의 재산이 되었고 돌아와 살 수 있는 집 같은 곳은 없었다. 버림받은 이주노동자가 된 것이다.독일에서 살기로 마음먹고 살아간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주 노동자로 독일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산 결과 자녀들을 돌보지 못했다. 한국어를 배우지 못했거나 잊어버려 독일어 밖에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독일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처럼 독립을 선언하고 집을 떠났다. 만리타국 생활 뒤에 얻은 병은 치매였다. 중년과 만년을 독일어를 쓰며 살았지만 흐릿해지는 기억 속에 남은 의사소통 수단은 모국어 한국어 뿐이다. 하지만 독일 사회에서 한국어를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했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주위에 없다. 자녀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독일 사회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혼자 살아가게 된 것이다. 50년간 홀로 살아왔지만 죽음을 앞두고 홀로 죽는 것은 두렵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단체 ‘동행’(Mitgehen)은 독일에서 이방인을 살아가다 죽음을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파독 간호사 출신인 김인선씨가 자신의 사재를 털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편안한 임종을 돌보기 위해 만든 단체다. 이 단체는 이곳을 찾는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 출신인지를 묻지 않았다. 동행은 필리핀, 베트남인 등의 임종도 함께 해줬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김 대표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그러나 동행은 최근 자금이 고갈되어 지난 2월 파산신청을 했다. 정부에서 일부 지원금이 있었지만 규모는 제한적이다. 김 대표는 지난달 운영경비 마련을 위해 한국을 찾았지만 뜻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도움을 호소했지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동행'은 여전히 함께 길을 걸어가 줄 친구들을 찾고 있다.동행의 고문 변호사를 맡고 있는 법률사무소 KN파트너스의 김현주 변호사는 "한국에 복지법인이나 재단법인을 만들고, 기업 등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동행을 살릴 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복지법인이나 재단법인을 만들어 정기적 후원 시스템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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