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비상벨은 양치기소년?…학부모들 '이민 가고파'

서울시의회 자료, '전체 시내 학교 3분1만 설치...오작동 빈번...세월호 참사때 퇴선 명령 안 한 것과 뭐가 다르냐'

화장실 비상벨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학생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생님들이 학교에 고장난 비상벨을 그냥 놔두다니요?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퇴선 명령을 안 한 선장과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최근 서울 시내 한 학교의 학부모 A씨는 자녀로부터 학교 비상벨에 대한 얘기를 듣고 평소 살짝 고민해왔던 이민 생각을 더 깊게 하게 됐다. 갑자기 화재 경보 비상벨이 울려 당황해서 뛰어 나갔는데, 정작 다른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은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공부하고 일하더란다. 왠일인가 알아봤더니 이 학교 비상벨은 한 달에도 몇 번씩 이렇게 아무 이유없이 울려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들은 A씨는 어이가 없어서 학교에 가서 따졌지만 선생님들은 "별 것도 아닌 일에 웬 난리냐"라며 뚱한 표정이었다. A씨는 "학교 비상벨이 고장 났다는 것 자체도 황당한 일이지만, 고장 난 채로 방치한 선생님들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양치기 소년의 얘기처럼 만약 정말 불이 나 비상벨이 울렸는데도 학생이나 선생님들이 고장 나서 그런 줄 알고 대피를 서두루지 않게 된다면 자칫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일인데 이렇게 무감각하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A씨는 이어 "온갖 안전 부실과 해이가 겹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에 교육 현장에서도 경각심을 갖고 안전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작 비상벨 같이 중요한 안전 문제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며 "정말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 이민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한탄했다. 서울 시내 각급 학교 중 화재ㆍ재난ㆍ범죄 등 비상시에 대비한 비상벨이 설치된 곳이 전체의 3분의1에 불과하며, 그나마 고장나 오작동이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와 같은 학부모들은 교육 당국의 무신경과 교사들의 업무태만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이러니까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고 한탄하고 있다. 1일 서울시의회 유용 의원(새정치민주연합ㆍ동작4)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시내 초ㆍ중ㆍ고등학교 1301개중 비상벨이 설치된 학교는 504개로 전체 학교 중 3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편중 현상이 심했다. 대다수의 비상벨은 초등학교에 설치되어 있으며, 중고등학교는 설치된 곳이 거의 없었다. 전체 초등학교 599곳 중 487개교에 비상벨이 설치된 반면, 중학교는 384개교 중 11곳, 고등학교는 318교 중 6곳에만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장이나 오작동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지난해 서울 시내 학교에 설치된 3196개의 비상벨에서 1006회의 오작동이 발생했다. 설치대수 대비 3분의1에 달한다. 비상벨 설치학교 504개교 중 오작동 발생한 학교 수는 75개 학교로 파악이 됐다. 10회 이상 오작동이 발생한 학교도 40개교에 달했다. 유 의원은 "학교 폭력과 학교 내 범죄 및 안전사고 예방 목적으로 설치한 학교 비상벨이 설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할뿐더러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학교에서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서울시교육청과 학교 측은 학교 폭력 등 큰 일이 발생했을 때 초동대치도 불가능할 정도의 수준이고 이를 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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