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환 신임 금융연구원 원장
세계적으로 저금리, 저성장, 저물가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명목 국채금리가 마이너스 수준까지 내려가는 등 과거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의 많은 국가가 저물가의 공포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유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급기야 1930년대 미국의 극심한 경기침체를 설명하기 위해 잠깐 등장했다 사라진 한센교수의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이론이 80여년 만에 다시 경제학계의 중심 화두로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과 버냉키 전 미 연준 의장 사이에 장기침체 이론의 정합성을 둘러싼 논쟁이 열띠게 진행되고 있고 장기침체가 학계의 주된 연구주제로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기존 경제학 이론 및 교육의 한계를 주장하며 새로운 경제학 패러다임을 연구하고 교육하고자 하는 기관(Institute of New Economic Thinking)도 탄생해 많은 경제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럼 국내의 경제환경 및 금융산업은 어떠한가. 1인당 국민소득은 10년째 3만달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성장률 또한 빠른 속도로 둔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경제성장을 견인해왔던 수출 증가율마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어 앞으로의 회복도 낙관하기 어렵다. 더욱이 경기적 요인 외에 인구고령화 등 구조적 요인도 우리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금융산업을 보면 금융시장의 발전이 여전히 더딘 모습니다. 국민의 저축은 금융시장을 통해 다양한 위험 스펙트럼을 갖는 투자로 이어져야 하지만 현재는 금융시장 내 민간투자자의 역할이 제한된 채 국민연금이 주된 투자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은행과 보험은 저조한 수익이 낮은 이자율과 낮은 순이자 마진 탓이라 푸념하며 이자율과 순이자 마진이 증가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증권회사 등 많은 금융투자회사들은 국민연금에 의존하며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산업의 혁신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혁신하지 않는 금융산업에 어떻게 지속적인 수익을 내기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바뀌어야 한다. 경제운영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고 금융회사의 생존전략이 바뀌어야 하고 금융정책당국의 사고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첫째, 인구고령화가 가져오는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인구고령화와 저금리, 저성장, 저물가로 인한 소비감소 및 과잉저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운영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비대해지기만 하는 국민연금기금을 어떻게 운용해야 국민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이것이 다시 높은 기금운용 수익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둘째, 금융회사가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경쟁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규제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 불필요한 시장개입을 합리화시키는 과당경쟁이란 개념은 폐기됨이 마땅하다. 금융회사가 자발적으로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며 책임경영 할 수 있는 규제 및 감독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규제당국은 시장실패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시키는 위험요인 관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인구고령화와 저성장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요인을 잘 파악해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시스템위험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넷째, 정책당국은 시장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서민금융, 중소기업금융, 기술금융, 무역금융 등에 대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시장 보완적 정책금융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부작용 없는 정책금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점을 명심해 자원의 낭비 및 시장기능의 왜곡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금융 체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홍익대학교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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