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컴퓨터를 탄생시킨 사랑

앨런은 일상 생활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방을 늘 어질러 놓았다. 그의 셔츠는 바지 밖으로 삐져나와 있곤 했다. 그는 또 코트의 단추가 어느 단춧구멍과 짝인지 알지 못하는 듯 보였다. 앨런은 잘 씻지 않아 사립 기숙학교 시절 냄새를 풍긴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았다. 그는 급우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는 말을 더듬었다. 마지막이자 가장 특별한 점은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이다.  앨런의 주요 관심사는 과학이었다. 10대 초기부터 화학과 실험에 열을 올렸다. 기숙학교에서는 수학에 흥미를 보였다.  이 분야에서도 평가는 썩 좋지 않았다. 수학 교사는 "앨런은 공부하는 방식이 지저분하다"며 "어느 과목이든 기초를 다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앨런이 자신 안에 잠재돼 있던 창의력을 키우도록 한 것은 사랑이었다. 과학 영재로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선발된 친구가 그의 첫사랑이었다. 그 친구 크리스토퍼 모컴과 가까워지는 매개는 과학이었다. 앨런은 크리스토퍼와 어울리면서 학업성적도 올리는 공부를 하게 된다.  크리스토퍼는 1930년 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앨런이 키워온 4년 간의 사랑이 고백할 기회조차 없이 끝난 것이다. 앨런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깊은 절망에 빠진다. 그는 절망 속에서 크리스토퍼가 살아 있었다면 이루었을 과학적 발견을 대신 해내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크리스토퍼가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과학 연구에 매진한다.  튜링은 모든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기적적인 기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는 그 과정에서 사람이 계산하는 과정을 기계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컴퓨터의 원형을 처음 제시한 것이다.  책 '앨런 튜링: 더 에니그마'에는 매년 크리스토퍼 기일마다 그를 기릴 정도로 절절했던 튜링의 사랑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번역됐다. 마침 튜링의 극적인 삶을 그린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 오늘부터 상영된다.  사랑은 위대하다. 어머니의 사랑과 이성을 향한 열정은 물론 동성의 사랑도 사람을 길러낸다. 사랑이 없었다면 튜링의 '보편 튜링기계' 연구가 나오지 않았을 테고 컴퓨터 개념도 뒤늦게 형성됐을 것이다. 튜링의 지극한 사랑을 어떻게 그렸을지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감상할 포인트 중 하나다.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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