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술 한 잔 하자"면 으레 막걸리를 뜻했다. 당시까지 소주는 대중주 축에 끼지 못했다. 간혹 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있었지만 호주머니가 가벼운 막노동꾼 정도였다. 맥주는 비쌌다. 막걸리는 1974년 최고 출하량 기록을 세웠다. 당시 전체 술 소비량의 70%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후 막걸리 소비는 급격하게 감소해 소주에 '주류(酒類)의 주류(主流)' 자리를 내놓는다. 소주가 판세를 뒤집은 데에는 여러 요인이 어우러졌다. 정부 정책의 힘이 가장 컸다. 정부는 1975년 1분기에 소주업체들이 도수를 기존 35도에서 25도로 낮추도록 한다. 정부는 막걸리업체는 억누르고 소주업체를 지원한다. 막걸리는 유통구역을 제한한 반면 소주는 판매권역을 넓혀준다. 정부는 또 개천에서 뽑아올린 물로 막걸리를 빚는 술도가를 적발하며 막걸리가 비위생적이라는 인식을 퍼뜨린다. 또 검찰은 막걸리 밀주업자를 수시로 잡아들여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도록 한다. 한결 순해진 소주는 이렇게 다각적인 지원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시장을 차지했다.(신동철 '신문은 죽어서도 말한다')정부는 왜 소주 도수를 낮추게 하면서 소주 업체를 밀었나.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소주업체가 도수를 내려 원가 부담을 줄이도록 하는 대신 가격을 한 자릿수만 올리게 했다.정부는 무역수지 측면에서도 막걸리보다 소주를 권했다. 막걸리는 수입 밀로 빚어졌고 소주를 만드는 주정의 원료는 태국산 돼지감자 타피오카였다. 수입 밀은 사료 원료인 타피오카보다 비쌌다. 막걸리와 소주를 놓고 범정부적인 정책을 짜낼 정도로 당시 경제는 외환내우(外患內憂)에 시달렸다.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됐고 물가는 연간 20%대 급등했다. 진원지는 중동이었다. 중동 산유국이 유가를 올리면서 오일쇼크 파도가 세계를 덮쳤다. 중동산 원유 가격은 1973년 초 이후 1년 새 4.5배로 앙등했다. 다시 중동발 물결이 세계에 퍼지고 있다. 이번에는 저유가(低油價)다. 저유가로 소주 도수가 올라갈 것 같지는 않다. 소주 도수는 낮추는 쪽으로 경쟁이 붙었다. 진로가 17.8도짜리 참이슬을 내놓자 롯데주류는 17.5도짜리 처음처럼으로 응수했다. 그러나 오일쇼크가 술시장과 소비자의 선호까지 바꿔놓은 것처럼 저유가 역시 많은 영역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 영역이 무엇이며 어떤 변화가 닥칠지 궁금하다.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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