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단통법의 고해성사

이정일 산업2부장

내 이름은 '단통법'. 호적(법령)에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로 기록돼 있다. 주민번호(법률 번호)는 제12679호. 지난 5월2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국회의사당에서 통과돼 10월1일 이 땅에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제1조(목적)부터 제2조(정의), 제3조(지원금의 차별 지급 금지), 제4조(지원금의 과다 지급 제한 및 공시), 제6조(지원금을 받지 아니한 이용자에 대한 혜택 제공)…제22조(과태료), 그리고 부칙<제12679>까지 법률로써 갖출 것은 다 갖췄다.  탄생 배경을 언급한 제1조의 '이동통신단말장치의 공정하고 투명한 유통 질서를 확립하여 이동통신 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함'은 공공 복리 증진이라는 중차대한 역사적 사명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제3조에서는 기업들이 부당한 사유로 차별적인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을 금했고, 제4조에서는 지원금 상한액을 정하는 한편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강제했으며, 제6조에서는 지원금을 원하지 않는 소비자에게 요금을 할인해주는 선택적 혜택을 지원토록 했다. 이릍 어기는 기업은 제11조(긴급중지명령), 제13조(사실조사), 제14조(시정명령), 제15조(과징금) 등을 통해 불이익을 받도록 명시했다. 그럴 듯한 명분에 촘촘한 규제까지. 이 정도면 투명한 유통 질서 확립과 이동통신 산업 발전과 이용자 권익 보호라는 '일석삼조'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만개했다. 그러니 국회 통과 당시 재적 의원 215명 중 213명으로부터 축하를 받지 않았던가. 기권한 2명이야 처음부터 내가 탐탁지 않았다고 하니 섭섭하지 않다. 정말 섭섭한 것은 안면몰수하는 국회와 정부다. 국회는 법이 시행되자마자 제 구실을 하네, 마네 꾸짖더니 급기야 '찬성표를 던진 것을 후회한다'는 자기부정이 잇따랐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규제 법안을 만들어내더니 이제는 그 법에 장애가 있다며 여기저기 땜질을 하겠단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향에서 쫓겨난 내 신세가 한없이 처량하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심정이 심히 눈물겨운 것이다. 헌법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개정이니 뭐니 하는 소리에 한숨이 절로 터져나오는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언제는 보조금을 많이 쓴다고 자제하라더니 이제는 보조금을 더 쓰라고 부추기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조삼모사에 조변석개의 해괴망측한 상황이다. 단통법이 통과되면 왜곡된 시장이 정상을 되찾고 가계 통신비 부담이 줄어든다고 역설했던 주체가 바로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다. 그런데 이제와 모든 책임을 제조사와 이통사에 돌리고 있으니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들의 행정력과 철학과 자존심이 겨우 이 정도란 말인가. 설령 여론이 험악하더라도 입법 취지를 강조하면서 분위기를 다독였어야 마땅하지 않나. 소비자들은 아우성인데도 앓는 소리만 하는 제조사와 이통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딴 사람은 없고 잃은 사람 투성이인 화투판도 아니건만, 자신들이 더 큰 손해를 본다며 서로 눈을 흘긴다. 저러다 협력관계가 틀어질까봐 심히 걱정스러운 지경이다. 그보다는 소비자 편익에 초점을 맞춘 단말기와 서비스를 확대하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야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시장에서는 기업과 고객이 선수다. 정부와 국회는 심판이다. 경기가 재미 없다고 심판이 링에 오를 수는 없는 법이다. 흥행이 안된다고 규칙을 막무가내로 바꿔서도 안된다. '최소한의 규제가 최고의 정책'이라는 경제학의 오랜 원칙을, 규제의 출산물인 내가 강조하는 것이 난센스임을 잘 알지만 지금 이동통신 시장이 난센스 투성이다. 다만, 이왕 이렇게 태어난 몸이지만 지금의 혼란이 서둘러 정리되기를, 그리하여 유통 질서 확립과 이동통신 산업 발전과 이용자 권익 보호라는 '일석삼조'가 하루빨리 달성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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