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워터게이트'의 선인(善人)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에는 수많은 인간형이 등장한다. 한 전직 중앙정보국(CIA) 요원은 개인으로는 나무랄 데 없지만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른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에서 일하는 그는 다른 행동대원 네 명과 함께 1972년 6월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 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들켜 체포된다.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닉슨 재선위원회가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민주당 진영을 상대로 불법적인 정치공작을 벌여왔음이 차츰 드러나게 된다. 정치공작은 광범위했고 저열했다. 백악관으로 자리를 옮긴 기자 출신 인사는 민주당 예비후보 중 한 명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허위 사실을 적은 기고를 언론매체에 보내 실리게 했다.  행동대원 수십명이 전국을 돌면서 민주당의 선거운동을 방해했다. 법무장관을 지내고 재선위원장을 맡은 인물과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정치공작 자금의 인출을 승인했다.  닉슨 캠프는 불리한 사실이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도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예컨대 특혜를 주는 조건으로 기업에서 선거자금을 걷었다는 사실이 확산되지 않게끔 관계자에게 압력을 넣어 증언을 번복하게 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가 콤비를 이뤄 워터게이트의 실체를 파헤친다. 둘은 취재ㆍ보도한 사실을 엮어 1974년 1월 책 '대통령의 사람들 모두(All The President's Men)'를 낸다.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도록 했다는 의혹이 확인되면서 결국 물러난다. 그가 미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임기 중 사퇴한 지 40년이 지났다. '대통령의 사람들 모두'는 닉슨의 심복은 다들 워터게이트에 관여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재선위원회의 회계 담당자 휴 슬로언은 예외였다. 그는 자신이 몰랐던 진상이 보도되자 재선위원회를 그만둔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에게 비밀자금 집행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들려줌으로써 워터게이트를 여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다.  슬로언은 첫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제조업체 관리직으로 새로 출발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지난 40년 동안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워터게이트 코너에서 그의 근황을 접했다. 그는 미시간의 차 부품 소재업체 우드브리지 그룹에서 최고경영자(CEO)로 10여년 근무한 뒤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안심이다. 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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