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황우석 사태 다룬 임순례 감독의 신작 '제보자'…'순정남' 유연석의 연기변신
영화 '제보자' 중에서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대한민국은 '황우석'이라는 이름에 열광했다. 2004년 전세계 최초로 체세포를 복제해 인간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과학적 성과에 과학계는 물론 언론과 정계, 시민들까지 모두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그의 논문은 세계적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으며, 이듬해인 2005년에는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문제의 논문까지 발표했다.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고, 제2의 황우석을 꿈꾸는 과학도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후에 이 논문들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황우석 신화'는 많은 이들에게 상처만을 남기고선 물거품처럼 사라졌다.임순례 감독의 신작 '제보자'는 10년 전 그 사건을 다시 들추어낸다.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줄기 세포를 연구한다"는 영화 속 이장환 박사(이경영)는 누가봐도 황우석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무엇이 진실인지 끝까지 파헤치려는 한 시사고발프로그램의 피디 윤민철(박해일)은 묵묵히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나간다. 실제로 당시 MBC 피디수첩은 2005년 11월 황우석 연구팀의 난자 입수 의혹을 보도하고는 엄청난 역풍에 시달려야 했다. 제작진의 강압적 취재가 문제가 되면서 담당피디는 징계를 받고, 방송 자체가 중단됐다. 그리고 이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가 없다"는 결정적인 후속방송이 나가면서 황우석 교수팀과 피디수첩간의 치열했던 진실게임도 일단락됐다. 영화보다도 영화같은 이 이야기들을 다시 꺼낸 임순례 감독은 "줄기세포가 진짜냐 가짜냐가 중점이었다면 이 영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참언론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영화를 소개한다.
영화 '제보자'에서 제보자 심민호 역할을 맡은 유연석은 "나라면 그 상황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진실 앞에 당당할 수 있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또 다른 핵심축은 '제보자'에 관한 것이다. 연구자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어렵사리 용기를 낸 '제보자'가 없었더라면 '황우석 신화'는 더 오랫동안 국민들을 농락했을 지도 모른다. "진실과 국익 중 무엇이 먼저냐"라는 이 불편한 물음에 대해 갈등하는 인물, 제보자의 역할은 배우 유연석(30)이 맡았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유연석은 "시나리오를 보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맞서고 고민하는 인물의 모습에 끌렸다"고 말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제보자였다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하면서까지 소신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 이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진실 앞에 당당한 것 자체가 힘든 일이 됐을까? 그런 질문들이 계속 생겼다. 나 역시도 10년 전 그 사건을 떠올려보면, 언론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었던 기억이 난다."처음으로 하는 아빠이자 연구자라는 역할에 고민도 많았다. 수의대 연구원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외모나 행동, 습관 등을 관찰했다. 일부러 밋밋한 모양의 안경을 골랐고, 몸집보다 큰 옷을 입었다. "이 분들이 무언가 하나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생긴 습관들이 하나씩 있더라. 손톱을 뜯는 분도 있고, 머리를 꼬는 분들도 있고. 그래서 자세히 보면 영화 속 제보자가 손을 자꾸 만지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최대한 담담하게, 담백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영화 속 이장원 박사는 사람들을 최대한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도록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장면이 많은 반면, 제보자는 오히려 정적이고 담담하다. 자신이 믿고 말하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오히려 불필요한 감정이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해석이다. "처음에는 아빠라는 설정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아픈 아이를 둔 아빠의 삶의 무게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감독님의 조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을 앞두고의 고민과 갈등, 또 그 진실이 얼마나 호소력있게 전달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 등에 보다 집중을 많이 하게 됐다."'제보자'에서는 두 얼굴의 언론이 나온다. '황우석 영웅 만들기'의 주역인 언론과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려는 언론. 10년이 지난 지금의 언론은 어느 쪽에 가까운지 영화는 되묻는다. 윤민철PD가 방송이 나갈 수 있도록 방송사 사장 앞에서 온몸을 던지며 방송윤리장면을 외치는 장면이야말로 영화 '제보자'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다. 10월2일 개봉.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사진=최우창 기자 smic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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