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기울던 순간, 탈출을 도운건 ‘친구들’뿐이었다”

[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 세월호가 바닷물 속으로 점점 가라앉던 당시 단원고 학생들 곁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넨 건 선장도 선원도, 해경도 아닌 ‘친구들’뿐이었다. 구명조끼를 꺼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준 이도,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몸을 배 밖으로 밀어주고 끌어준 이도, 배 안에 남겨진 사람들이 많다고 알리며 구조를 요청한 이도 모두 십대 후반에 불과한 학생들이었다. 28일과 29일 연이틀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임정엽) 심리로 수원지법 안산지원 401호 법정에서 진행된 증인신문을 통해 생존한 단원고 학생 22명은 탈출 당시 긴박한 상황을 떠올리며 힘겹게 말문을 이어갔다. 첫날 증인석에 앉은 A양은 “배 밖으로 빠져나올 때 복도에 친구들이 줄지어 있었다. 살겠다고 막 뛰쳐나온 애들은 없었다. 서로서로 울지 말라고 다독이면서 밖에 있는 친구는 안에 있는 친구를 끌어주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친구는 먼저 나가는 친구의 몸을 밀어줬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내 방송에서는 계속해서 “가만히 있어 달라. 움직이면 위험하다”는 얘기만 나왔으며 특히 단원고 학생들을 언급하며 재차 대기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배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거나 대피와 탈출을 알리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구명조끼를 나눠 입은 학생들은 계속해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오자 앉아서 대기했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하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승무원이나 선장이 우리보다 지식이 많을 테니 ‘대기하라’는 말을 믿고 계속 기다렸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재차 나왔던 걸 분명히 기억하는 이유는 옆에서 친구들이 울면서 ‘가만히 있는데 왜 자꾸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거냐’고 말했기 때문이다.”한 여학생이 자신의 오빠와 주고받은 연락 시간에 따르면 이들은 한 시간 넘게 앉아서 대기했다. 기다리던 학생들은 방 안으로 점점 물이 차오르자 구명조끼를 나눠 입고 서로를 도와가며 탈출을 시도했다. 나서서 구명조끼를 나눠준 건 반장인 여학생과 한 남학생이었다. 이후 이들을 도운 ‘어른’이 있었다면 일반 승객뿐이었다. 선미 쪽으로 이동해서 탈출했다는 한 여학생은 “오르막을 넘어야 했는데 친구들이 밑에서 받쳐주고 먼저 나간 애들이 밖에서 끌어당겨줘서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또 다른 학생은 “물살에 휩쓸려 캐비닛이 넘어졌는데 애들이 놀라서 뛰쳐나갔다. 캐비닛을 밟고 애들이 서로를 끌어올려주며 방 밖으로 우선 나왔다”며 “이후엔 어떤 일반 승객이었던 아저씨가 커튼 줄을 묶어줬고 밖에서 고무호스를 내려준 다른 아저씨가 도와줘서 벽을 타고 나갈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학생들은 방에서 나오기 전, 복도에서 대기하던 때, 배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고(故) 박지영씨를 제외하고는 선장이나 선원을 본 기억은 없다고 했다. 진술에 따르면 박씨는 선원 전용 통로에서 문을 열고 나와 학생들에게 달려온 뒤 “구명조끼를 입었느냐”고 물어보고는 로비 쪽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후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법정증언을 통해 해경이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벌이지 않은 정황도 드러났다. 한 학생은 “애들이 바다 쪽으로 나가면 건져주긴 했는데 배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다. 그래서 복도에서 기다리면서 애들이랑 ‘왜 들어오지 않느냐’고 이야기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해경이 나서서 구조자를 찾은 게 아니라 바다에 떨어진 사람이나 스스로 갑판으로 나온 사람만 구조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배 밖으로 나왔다는 한 여학생은 “나가면서 해경에게 ‘저기 안에 애들이 많다’고 말했는데도 ‘구명조끼를 벗으라’는 말만 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학생도 “갑판 위로 나왔을 때, 헬기 탈 때 잡아주고 앉혀주고 한 것 말고는 도와준 게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증언은 계속해서 나왔다. 학생들은 “헬기 소리는 계속 들리는데 구해주지 않으니 답답했다”, “헬기 위에서 보니 밑에 상황이 다 보였다. 해경들은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고 토로했다. 학생들은 진술 말미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친구들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제발. 사고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는 방송이 처음부터 나왔고 대처와 구호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친구들이 희생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진술이 끝나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애써 눌러왔던 한숨이 터졌다. 한 학생의 마무리 진술은 듣는 이들의 가슴을 둥둥 쳤다. “우리끼리도 도와서 나왔는데 어른들이 도와줬다면….”양성희 기자 sunghe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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