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나는 '남편의 눈'…이젠 소리책 녹음도 해요

시각장애인의 아내 최명려씨캠코 장애인부부 합동결혼식 인연으로 오디오북 제작 참여[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당신 목소리는 언제나 듣기에 아름다워요." 지난 5월30일 서울의 한 녹음실. 송광춘(77세)씨는 아내 최명려(46세)씨가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줄 소리책 녹음을 무사히 마치자 이렇게 속삭였다. 앞은 볼 수 없지만 그래서 더 섬세하게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였다.

▲2012년 합동결혼식 당시 사진. 왼쪽부터 최명려씨, 송광춘씨.

아내는 12년 간 시각장애인 1급인 남편의 눈이 되어 살아왔다. 시각장애인이 겪는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지난 4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소리책 녹음 지원자를 뽑을 때도 흔쾌히 나섰다. 송 씨도 기쁜 마음으로 응원해줬다. 매일 밤 마주 앉아 아내의 책 읽는 연습을 도왔다. 교육과 녹음을 위해 포항에서 서울까지, 3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동할 때도 송 씨는 아내와 함께 했다. "실 가는데 바늘이 빠지겠나요". 송 씨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송 씨 부부는 2002년, 양산의 한 찜질방에서 처음 만났다. 송 씨는 그 곳에서 안마치료일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손님이었다. 당시 아내는 임파선염과 갑상선암으로 인해 몸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아픈 상태였다. 최 씨는 "주변의 권유로 그 곳에서 안마치료를 받게 됐는데 남편의 손길이 닿는 순간 '낫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둘은 만났고 이후 항상 함께였다. "남은 평생 '남편의 눈이 되어 함께 살아야겠다', '옆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어도 사주고 바닷가에도 함께 가고, 제가 적극적으로 프로포즈를 한 결과지요". 최 씨는 쑥쓰러운 미소를 지었다.이들이 처음 만났을 당시 송 씨는 66세, 최 씨는 35세였다. 30살이 넘는 나이차지만 세대차이는 전혀 없었단다. 남편은 아직도 아내를 '애기야'라고 부른다. 둘은 여전히 서로에게 애틋했다. 송 씨는 아내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 뿐이라고 했다.이들은 2년 전 결혼식을 올리면서 사랑을 재확인했다. 때는 2012년 4월6일. 송 씨 부부는 그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결혼식을 평생 못 할 줄 알았지요. 웨딩드레스를 입고 한껏 꾸민 아내의 모습을 볼 수는 없어도 정말 아름다웠을거예요." 당시 캠코는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장애인 부부 50쌍의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지원했다. 송 씨 부부는 합동결혼식 때도 많은 부부들 사이에서 시샘을 받을 정도로 서로에게 다정했다고 한다. 캠코의 소리책 녹음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 날의 인연 덕분이었다. 희망이 돌고 돌아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또 다른 도움과 희망으로 전달된 셈이다. 최 씨는 "여러 사람에게 받았던 도움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고 싶었다"며 "내 목소리가 남편과 같은 처지에 있는 수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하다"고 전했다. 최 씨가 녹음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오디오북 '마음으로 듣는 소리'는 인문ㆍ교양서적부터 그림동화까지 총 70권, 1만4000부가 제작된다. 최 씨를 비롯해 캠코 임직원, 성우와 작가들이 참여했다. 오디오북은 연말까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센터를 통해 전국 맹학교 및 점자도서관 등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와 기관에 무료 배포될 예정이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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