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케이스로 누가 당한뒤, 법 개정할 것"부작용 알면서도 '正義'에 눌려 눈치만[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김영란법이요? 좋은 법 아닌가요? 공무원이 100만원 이상 돈 받으면 형사처벌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중소기업에 다니는 40대 중반의 남성 이모씨는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이른바 '김영란법'에 대해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김영란법의 원안과 정부 수정안의 차이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잘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흔히 아는 '김영란법'에 대한 일반인들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19대 후반기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일반 국민이 흔히 알고 있는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직무 연관성이나 대가 없이 돈을 받아도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라며 "이것이 김영란법 원안의 큰 맥"이라고 설명했다. 김영란법은 일반적인 정의(定義)와 달리 사실 들여다보면 맹점이 많은 '두 얼굴'의 법안이다. 법안이 갖고 있는 '공직사회 부정부패 척결'이란 정의(正義) 가치에 함몰돼 곳곳에 숨어 있는 허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영란법이 위헌 시비에 걸려 집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법 테두리 안에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바로 국회에 있다"며 법안을 둘러싼 국회 차원의 논의가 불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대법관 출신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입법예고를 해 붙여진 별칭이다. 법안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법안'으로, 크게 김영란법 원안(초안)과 정부가 원안을 다듬어 국회에 제출한 수정안으로 나뉜다. 여기에 김영주ㆍ이상민ㆍ김기식 의원이 각각 발의한 의원안이 또 있다. 2012년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마련한 원안은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은 공무원은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불문하고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부 논의 과정에서 법무부는 김영란법 원안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펼쳤고, 결국 금액 규모와 상관없이 금품수수 행위를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되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경우엔 과태료만 물리도록 처벌 수위를 낮춘 내용의 정부 수정안이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됐다. 김영란법은 정부가 손을 댄 수정안보다 원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원안이냐 수정안이냐'보다는 법안의 겉모습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이라고 이해관계자는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여당 의원은 "김영란법은 여당과 야당 간 정쟁에 밀려 처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법안이 가진 문제 탓에 못 한다고 봐야 맞다"고 토로했다. 대표적인 것이 김영란법을 둘러싼 위헌 시비다. 김영란법에는 위헌 논란을 야기한 조항이 적지 않을 뿐더러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을 때의 파급력을 감안하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준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우선 김영란법 원안은 헌법이 규정한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한다는 지적이다. 이성기 성신여대 교수는 "금품수수 처벌 구성 요건에 직무 관련성이 필요하다"며 "직무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공직자의 금품수수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정승면 법무부 법무심의관도 "직무 관련성을 따지지 않은 원안은 사적관계에서 발생하는 부분까지 형사처벌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헌법상 사적자치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좌제를 연상케 하는 항목도 위헌 여부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다. 공직자의 가족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헌법상 연좌제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위헌 논란의 쟁점이다. 그러나 배우자, 직계 존ㆍ비속, 형제ㆍ자매 등으로 대상을 명확히 하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공직자를 곤란에 빠뜨리기 위해 금품을 수수하는 등 김영란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 같은 김영란법이 가진 위헌 가능성 등 일련의 문제점이 결국에는 사법부의 과도한 권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은 "김영란법의 핵심 골자를 중심으로 한 법안 통과는 당연하지만 나머지는 문제점을 갖고 있는 부분이 많다"며 "김영란법은 개정안이 아닌 제정 입법인데, 법리적 문제 등을 잘 정리해 안을 통과시키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div class="blockquote">발의한 권익委도 헷갈려…부정청탁·공직자利害 '아리송法'- 民·官·學계 제각각 다른 해석 쏟아내…"조항 하나하나가 논리적으로 다 부서지고 보완이 안됐다, 최소한의 완결성도 없어 참담" [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입법을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주무부처 장관도 이렇게 저렇게 볼 수 있다며 오락가락이고.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의 공식적인 발언을 그렇게 뒤집어 버리면 국회는 대체 뭘 가지고 (심사)합니까."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은 '김영란법'을 두고 전문가들은 물론 최초 발의한 국민권익위원회조차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말을 바꾸자 답답한 심정을 쏟아냈다. 정무위는 지난해 12월 이른바 김영란법이 첫 상정된 이래 지금까지 세 번의 법안소위와 한 차례 공청회를 열었다. 그런데 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김영란법을 처음 고안한 국민권익위원회는 물론 민ㆍ관ㆍ학계 전문가 집단조차 앞뒤가 맞지 않는 제각각의 유권해석을 내놓는 바람에 입안 절차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권익위 내부에서도 "김영란 당시 권익위원장이 제안한 법안이라서 명확한 입장 표명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우선 '부정청탁'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5월23일 열린 2차 법안소위에서 이성보 권익위원장에게 저축은행 후순위채 사기 발행, 동양증권 기업어음(CP)ㆍ회사채 불완전판매 사건 등을 예로 들며 "피해자들이 법으로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국회의원이나 금융감독원을 찾아가 '피해가 해결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요청한다면 부정청탁에 해당되느냐"고 물었다. 이 위원장은 "그런 행위를 명시적으로 요구하면 부정청탁에 해당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회의에서 이 위원장은 같은 질문에 "(부정청탁의) 정의 조항을 수정해 해결할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공익적인 목적으로 민원을 제기한 경우'에 대해서는 예외조항을 두는 것으로 부정청탁의 정의를 수정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김 의원은 다시 "국민에게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일일이 하라는 것은 과도한 요구"라며 조문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조문은 해석의 논란이 가장 많은 부분이다.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넓어 형사처벌 대상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고 온갖 예외사례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정무위 소속의 다른 의원은 "전문가들이 공식 회의에서는 '문제 없다, 원안대로 가자'는 식으로 일관하다가 회의가 끝나면 그제서야 '너무 포괄적인 법'이라며 슬쩍 문제를 인정하곤 한다"고 귀띔했다. 김영란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데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의 도구로 번진 만큼 전문가조차 '정치적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이럴 바에야 따로 불러다가 '솔직히 말해봐라'고 하는 게 낫겠다"고 답답해했다.부정청탁의 형사처벌 대상을 둘러싼 혼선도 점입가경이다. 정무위 여당 간사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부정청탁을 하는 것이라면 제3자든 본인이든 처벌하자는 취지냐"고 묻자, 이 위원장은 "본인이 하는 것이든 제3자를 통하든 청탁 자체는 전부 다 금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금지는 하되 처벌은 안 하는 선언적인 규정"이라고 덧붙여 좌중을 당혹케 했다. 부정청탁을 방지하는 규정이 자칫 국민의 '민원 제기' 자체를 근본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이 위원장은 "(청탁한) 본인은 처벌하지 않고, (부정청탁에 개입한) 제3자를 처벌하면 된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금품 수수와 관련해서는 '공직자 면책 요건'을 두고 발언이 뒤바뀌었다. 이 위원장은 지난 5월27일 3차 법안소위에서 공직자의 가족이 금품을 수수했을 경우 "본인이 책임지고 반환 인도를 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공직자) 본인이 돈을 받은 것과 똑같은 형사처벌을 받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처음 열린 공청회에서는 "(가족의 수수한 금품을 반환하지 않더라도) 신고하면 면책되는 게 맞다"고 다른 의견을 내놨다. 이에 김용태 의원이 즉각 "장난하느냐. 무슨 말이냐"라며 발끈하기도 했다. 게다가 법안 심사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논란이 계속되자 이 위원장은 "입법 예고안을 만들 때는 내가 권익위원장이 아니었다"며 책임 회피성 발언을 했다. 이 같은 권익위의 행태에 대해 김용태 의원은 "심히 유감인 정도가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한민국의 정말 중요한 부처인 권익위에서 이게 웬 일이냐"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김기식 의원도 "도대체 국회에 와서 입법 심의를 하는데 조문 해석도 못 하느냐"면서 "어떻게 (법안) 검토를 이렇게 해 올 수 있냐"고 질타했다.정치권은 김영란법에 쏠린 국민적 관심을 의식해 "8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정안도 아닌 제정 법률안이 자칫 졸속 처리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김용태 의원은 "(법안이) 완벽하게 완비가 돼서 온 줄 알았다. 그런데 각 조 하나하나가 논리적으로 다 부숴지고 보완이 안된 게 사실"이라며 "최소한의 완결성을 갖고 왔어야 하는데, 참담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