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송해인
"제주 굿과 소리, 춤에 푹 빠져 버렸어요. 우리의 전통연희가 대개 그렇듯 가무악이 혼합된 형식이죠. 제주도 특유의 무속과 음악을 현대무용과 미디어아트를 가미해 전 세계에 소개하고 싶어요."젊은 여성 연출가 송해인씨(31)는 다소 수줍어하면서도 제주도와 전통예술을 향한 남다른 열정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그의 창작공연이 다음달 열리는 세계최대의 공연예술축제인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Edinburg Fringe)의 무대 위에 2년 연속 오르게 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7일 제주 해비치 아트페스티벌이 열린 서귀포시 표선면 해비치호텔에서 송씨를 만났다. 이날 축제 메인 행사였던 '아트마켓'에는 전국에서 온 153개 공연단체들이 문화예술회관과 기업 관계자, 투자자들을 상대로 공연을 홍보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 중 제주의 대표 전통예술 가무악단 '노리안 마로' 부스에서 송씨를 찾을 수 있었다. 서울 토박이인 그가 제주를 찾아 이 지역 특유의 전통예술공연을 10년 넘게 올려온 극단을 찾아 배우며 일한지는 벌써 5년째다. 2년 전 영국 유학길에 올랐지만 제주를 수시로 찾아 공연을 올리며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런던 브루넬대학에서 미디어아트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가 연구하는 주제 역시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다. 송씨는 "국악과 현대무용을 전공한 후 전통창작예술에 관심을 쏟고 있을 때 제주 굿의 강렬한 리듬과 세상의 슬픔을 위무하는 메시지에 크게 매료됐다. 전통예술을 배우러 제주를 찾았을 때는 세 달만 머물려고 했는데, 제주에서의 합숙생활이 3년이 돼 버렸다"며 "6명 정도의 소규모로 구성된 단원들은 대부분 나이가 더 많았지만 창작극에 대한 시도를 반겨줬다. 어렵지 않게 생활하면서 함께 공연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수년간 전통을 기반에 둔 창작극에 집중하면서 송씨는 지금 제주 지역 대표 연출가이자 무용가로 활동 중이다. 그가 소속한 '노리안 마로'는 이 지역 조그만 소극장에서 매달 늘 새로운 작품으로 5년째 상설공연을 하고 있다. 끊임없는 창작, 춤·소리·타악·현대무용 등 여러 장르의 단단한 팀워크는 에딘버러에서도 '노리안 마로'의 진가를 알아보게 했다. 지난해 공연된 작품 '푸다시'(푸닥거리의 제주도 말)를 두고 영국의 축제 매거진 '컬쳐트립’(The culture trip)'은 "놓치지 말아야 할 에딘버러 10대 공연"으로 선정해 극찬하기도 했다. 공연단의 이름인 '노리안 마로'는 춤, 소리, 풍물 등을 제대로 즐기며 할 줄 아는 모임이라는 '노리안'과 최고를 뜻하는 '마로'로 이뤄진 옛 우리말의 합성어다.
노리안마로 공연 '푸다시'의 한 장면. 송해인씨(왼쪽)가 현대무용과 연출을 맡았다.
이번에 에딘버러에서 선보일 두 번째 작품은 '이어도: 파라다이스 로스트(잃어버린 낙원)'이란 작품이다. 무형문화제 13호로 지정된 ‘제주큰굿’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해낸 시도로 관객들을 풍랑에 휩쓸린 한 여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여정으로 데려간다. 땅을 두드리는 북과 장구 장단, 한국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의 조화, 미디어아트와 조명이 어우러진 빛과 소리의 물결이 무대를 가득 채울 예정이다. 이어도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삶을 이어가야 했던 제주 해녀와 어부들이 마음속에 품었던 버팀목, 꿈에서라도 가고자 했던 전설 속의 섬이다. 근심과 걱정, 굶주림과 아픔이 더는 없는 곳으로, 제주 사람들은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이어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노리안 마로는 영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이달 초 제주도민들에게 먼저 이 작품을 선보였다. 송씨는 "세월호 참사 등 많은 사건, 사고로 사람들의 가슴에 큰 상처가 남아 있다. 기적이 일어나는 섬 '이어도'를 담아낸 이번 공연을 통해 아픈 현실을 강인하게 이겨낸 제주 선조들의 지혜로운 마음이 국내외로 전달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그는 이어 "제주의 소리와 음악은 물론 현대적 안무가 만나진 이 작품의 예술적 깊이와 신명으로 한국과 제주의 흥과 멋, 해학과 지혜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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