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토토보다 무서운 게임 '캐시아이템'…'차 팔고 집 팔아' 도박성 러시

한 게임이용자가 지난 몇 달 간 게임아이템 구매에 수천만원을 사용한 내용이 담긴 아이템 중개사이트의 결제 정보.

-'차팔고 집팔아' 도박성 아이템 구매-게임사 "자기돈 쓴다는데 무슨 상관", 문광부 "기업이 알아서 할 일"[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최근 불법토토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이와 비슷한 류의 도박성 짙은 '캐시아이템' 판매가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욱이 게임사의 무분별한 캐시아이템 판매는 이를 감시할 법적 장치 없이 게임사 '자율규약'을 따르는 선에서 행해지고 있다. 게임산업 육성과 '규제완화'라는 최근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비춰볼 때, 향후 게임사의 이러한 행태는 모바일게임 시장으로까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차 팔고 집 팔아 캐시아이템 러시…게임사 "자기 돈 쓴다는데 무슨 상관"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3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전년대비 10.8% 성장한 9조7525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온라인게임이 차지하는 비율은 70%로 6조7389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온라인게임의 성장 이면에는 사행성 캐시아이템 판매라는 '암(暗)'도 존재한다. 이것은 이제 단순한 오락이 아닌 도박수준으로 변질되고 있으며 '게임산업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게임사의 주 수익원인 캐시아이템은 크게 '확률형'과 '캡슐형'으로 나뉜다. 확률형은 게임에 유리하도록 다른 아이템과 조합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행위를 게임 유저들은 '러시(Rush)'라고 칭하기도 한다. 러시에 성공하면 강화된 아이템을 얻어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지만 실패하면 구입한 아이템은 증발한다. 캡슐형 아이템은 복불복 뽑기와 같다. 유저가 현금 10만원을 투자해 100만원 상당의 아이템을 얻을 수도, 1만원 상당의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확률형이든 캡슐형이든 보다 좋은 아이템을 얻을 확률은 극히 낮다.문제는 이러한 캐시아이템이 일정한 현금을 투자해 '운'을 바탕으로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아이템을 얻거나 잃게 하는 '도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온라인게임의 '중독성'도 사람들로 하여금 캐시아이템을 위해 지갑을 열도록 부추기고 있다.더욱이 대부분의 게임사는 캐시아이템의 확률을 임의로 조정하고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얼마만큼의 확률이 적용되고 있는지 공개를 꺼리고 있다. 또한 캐시아이템을 구입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게임을 즐길 수 없도록 만들어 사실상 캐시아이템을 강매하고 있는 상황이다.지난해 11월에는 인터넷 방송의 한 비제이(BJ·Broadcast Jockey)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게임 캐시아이템 '스냅퍼의 반지'를 얻기 위해 현금 수천만원을 쏟아 붓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방송해 수만명의 시청자가 몰리기도 했다. 당시 방송을 시청했던 대학생 김석웅(28)씨는 "해당 BJ는 과거에도 현금 4000만원 상당의 아이템에 도박성 러시를 해 성공했고 결국 억대에 달하는 아이템을 얻었다"며 "러시를 위해 '차 팔고 집 팔았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는데 사실상 아이템 러시는 불법토토보다 중독성이 강한 도박이다"고 언급했다.게임업계도 이러한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개인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캐시아이템을 구매하고 러시하는 것은 개인의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며 "자기가 번 돈을 자기가 소비하는데 무엇이 잘못됐느냐"라고 주장했다. ◆게임아이템 거래시장 2조원 육박…도박성 아이템 러시 부추겨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는 아이템 현금거래 시장도 도박성 아이템 러시를 양산하는 주 원인이다. 더욱이 게임업계가 이러한 현금거래 시장을 사실상 방치하고 오히려 확산시키는데 일조했다는 의견이 업계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2013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아이템 현금거래 규모는 지난 2003년 2800억원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2년 1조5000억원에 육박했다. 또한 42%의 게임이용자가 게임아이템을 현금으로 거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을 아이템으로, 아이템을 현금으로 즉시 바꿀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 있다 보니 아이템 러시를 도박수준으로 즐기는 유저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게임사, 게임물관리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도 넘은 캐시아이템 판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08년부터 '자율규약'을 만들어 시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지키는 게임사는 드물다.자율규약의 내용을 보면 '성인의 경우 한 달 50만원 이상, 청소년의 경우 한 달 7만원 이상의 캐시아이템 결제가 불가능하다'고 돼 있다. 그러나 유저와 회사가 아닌, 유저와 유저간의 아이템 거래시장이 활성화 돼 있는 현 시점에서 이러한 허울뿐인 규약은 수년째 구호에 그치고 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51)씨는 "결제한도가 있지만 가족 명의를 쓰거나 친구에게 선물받기 등을 통해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아이템을 살 수 있다"며 자율규약의 허점을 지적하기도 했다.대부분의 게임업체들은 아이템 현금거래를 금지한다고 약관에 명시하고 있으며 현금거래가 적발되면 강력한 처벌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은 아이템을 현금에 판매하고 있으면서도 유저끼리의 거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이템 현금거래 중개업체들과 제휴 마케팅을 진행하는 업체도 있다. 겉으로는 현금거래에 반대하면서도 오히려 현금거래를 부추기는 꼴이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현금거래가 많아지면 그만큼 게임이 인기 있다는 것의 방증"이라며 "현금거래가 늘어나면 게임 유저들이 더 많아지게 마련이다"고 털어놨다.정부는 기업의 자율성에 존재하는 이러한 맹점을 찾아내고 실질적 안전장치를 도입해야 하지만, 현재 모든 신경은 '규제완화'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는 상황이다. 무분별한 캐시아이템 판매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은 인식하면서도, 기업이 풀 문제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문광부 관계자는 "게임위와 기업의 자율규제 말고는 캐시아이템 판매를 막을 별다른 법률적 규제조항은 없다"며 "이는 기업이 풀어야 할 숙제다"고 말했다.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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