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신사임당, 현실은 율곡이이...세뱃돈이 떤다

-설레지 않는 직장인의 '설'-평균 상여금 123만원, 23%는 아예 못받아..이게 '이모.삼촌'의 현실-취직은 했니? 결혼 안 하니? 아이는?-부모님 잔소리.꽉 막힌 귀향길 답답하지만 들어오는 돈보다 나갈 구멍이 더 커 스트레스
[아시아경제 노미란 기자]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명절이 간소화되는 추세라도 직장인에게 직장을 떠나 가족과 함께 지내는 일은 매우 특별하다. 지루하게 반복되던 노동의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하지만 직장인들에게 설 명절은 단순히 '마음 편한' 빨간날 만은 아니다. 설 명절을 위해 쓰는 지출이나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집으로 향하는 발길이 머뭇거릴 수 밖에 없는 직장인의 애환을 들여다보자.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982명을 대상으로 설 명절 스트레스를 조사한 결과 33.7%가 '설 연휴를 앞두고 선물·용돈 등의 지출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1명(10.6%)은 '설 연휴 지출에 대한 부담으로 귀성을 포기한 적 있다'고까지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지출에 대한 부담에 이어 '잔소리 등 정신적 스트레스'(16.8%), '운전 등 교통체증 스트레스'(15.7%), '지나친 과식으로 체중 증가'(10.4%), '명절 음식 준비 등 집안일'(10.2%) 등의 순이었다.가장 많이 지출하는 항목으로는 '부모님 용돈 및 선물'이 59.3%로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교통비'(9.5%), '새뱃돈'(5.9%), '음식 마련 비용'(5.4%), '친척 어른 선물'(4.3%) 등이 뒤따랐다.◆일과 가정의 양립은 명절에도 어려워 - '명절증후군'은 더이상 꾀병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실제로 맞벌이 주부인 이종영(가명 34)씨는 명절을 앞두고 심란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시댁이 부산인 이씨는 지난 추석 연휴 내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과정을 수도없이 반복했다. 나중엔 다리가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강도높은 가사 노동 후 직장의 복귀가 원활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이씨는 "연휴 다음날 마우스를 쥘 힘조차 없다고 하니 다들 꾀병을 의심하더라"며 "이번 설에는 무리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라고 털어놨다. 결혼한 지 6개월이 지난 신혼 주부인 서영주(가명 27)씨의 고민은 오히려 '명절 증후군'을 겪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서씨는 종합병원 간호사로 일한지 올해 2년차로 설날 바로 전날 당직 근무를 서야한다. 이 때문에 명절날 시댁 음식을 만드는 데 참여하지 못한다. 명절 며느리 노동에서 벗어난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지난해 추석 때도 일손을 돕지 못해 '먹기만' 하는 며느리가 됐기 때문이다. 서씨는 "차라리 일을 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이유없이 빠지는 것이 아니지만 설날 당일에 가서 떡국을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고 토로했다. ◆ 취직하니 결혼, 결혼하니 자식, 그 다음은? - 노연주(가명 35)은 올해 설 연휴와 주말을 포함한 3박4일 동안 제주도 여행을 다녀올까 생각 중이다. 노씨의 본가가 제주도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노씨의 부모님은 강원도에서 설 명절을 보낸다. 노씨는 지난해 추석 때를 떠올리면 악몽이 따로 없다. 노씨의 여동생이 결혼 후 처음으로 제부와 함께 찾아와 보낸 명절 연휴 기간 동안 노씨는 단숨에 구박덩어리로 등극했다. 노씨는 "여동생도 결혼하는데 너는? 이라고 물어보는 시선 때문에 숨이 막힐 뻔했다"며 "명절이 아니라 지옥을 경험하니 이번 명절에는 아예 집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결혼을 했다고 명절이 기다려지는 것은 아니다. 심영훈(39)씨는 결혼 5년차지만 아직 자녀가 없다. 일이 바빠 미루고 또 정말 원할 때 갖고 싶다는 생각에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설 명절을 앞두고는 생각이 많아진다. 심씨는 "부모님이 잔소리를 심하게 하지는 않지만 어떤 변명을 해야할까 고민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한번은 나올 질문이라 미리 대비가 필요하다"고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상여금? 우린 없다 -명절을 앞두고 모든 직장인이 설레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 따라 상여금의 액수는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아예 상여금을 받지 못하는 직장인들도 상당수다. 전국 372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4년 설 연휴 및 상여금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설 상여금의 평균 액수는 123만2000원으로 집계됐다. 기업규모별 지급액은 대기업(173만1000원)이 중소기업(111만8000원)보다 많았다.
광고대행사 직원인 구정태(가명 32)씨는 설날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경기침체의 여파로 홍보비를 줄인 기업들이 많아져 덩달아 사정이 어려워진 회사가 이번 설에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구씨는 "이번 설 연휴인 목요일과 금요일에도 기획자료, 시안 등 작성해야할 서류가 한가득"이라며 "일은 많은데 정작 상여금은 없어서 사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씨는 "명절날 만나는 친구들이 상여금 얘기를 하면 더 짜증스러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최경훈(가명 31)씨는 적게나마 명절 상여금을 받았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 많지 않은 상여금을 쪼개 조모와 부모님, 벌써 넷이나 되는 조카들에게 세뱃돈을 챙기려니 힘이 쭉 빠진다. 이들 사이에 '황금 배분'을 찾아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고민이 커진다. 최씨는 "부모님께는 든든한 설날을 만들어 드리고 싶고, 조카들한테는 인기 있는 삼촌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좀생이밖에 안되는 구나" 싶다며 "어렸을 때 돈 버는 삼촌이 짠돌이처럼 군다고 생각했던 때가 자꾸 생각난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노미란 기자 asiaro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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