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최초 고공강하훈련 받아보니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벨기에에는 '천혜의 요새'라고 불리는 에반에밀 요새가 있다. 이 요새는 벨기에를 침입하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방어망이 매우 촘촘하다. 지뢰밭과 철조망 은 물론 지하에는 벙커와 터널로 완벽하게 이어졌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다. 하지만 1940년 독일군의 낙하산부대 '팔슈름야거'는 이 요새를 기습해 벨기에군의 항복을 받아낸다. 벨기에군의 허를 찌른 이 작전은 현대전에서 가장 성공한 강습으로 기록된다 . 이후 각국에서는 고공강하침투를 위한 부대를 창설한다.

육군 특전사의 주요임무중 하나도 고공강하(HALO) 침투다. 고공강하는 7.6km이상의 상공에서 몸을 던져 공중에서 몸의 균형을 잡은 후 목표지점에 정확히 착륙하는 침투방식이다.

 

특전사중에서도 특전사라고 불리는 707특수임무대, 정찰대, 9여단 일부인원만 고공강하 임무를 수행한다. 지난달 24일 고공강하의 기초훈련을 받기 위해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특수전교육단을 찾았다.

 

특수전교육단 입구에 들어서자 특전사 베레모를 쓴 장병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장병들의 눈빛은 일반부대와 달리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장교의 안내를 받아 교육장에 한복판에 들어서자 일명 '코끼리'가 보였다.

 

코끼리는 강하훈련용 열기구다. 수송기에 비해 기상제약이 적을 뿐만 아니라 연평균 26억원의 유류비를 아낄 수 있어 여러나라가 사용한다. 기자는 당장이라도 코끼리에 올라타고 싶었다.

 

하지만 신동철 특수교육처장(소령)은 "코끼리를 타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기본자세와 정신무장이 필수"라며 "기초단계부터 시작해보자"고 권유했다.

 

신 처장 손에 이끌려 찾아간 곳은 윈드터널(Wind Tunnel). 윈드터널은 실외 모의 고공강하 시뮬레이터로 2층 높이의 원형구조물이다. 지난 1995년 5억원을 들여 제작한 것으로 국내에서 유일하다.

 

윈드터널은 다가갈수록 항공기엔진에서나 날법한 굉음을 내고 있어 옆 사람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윈드터널을 올라가자 굉음의 정체가 나타났다. 윈드터널의 지름은 15m로 둘레에 는 1m높이의 쿠션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윈드터널 한 가운데는 빈 공간으로 3중 철조망으로 깔려있고 밑에서는 거센 바람이 올라왔다.

 

바람은 1.8m짜리 선박용 프로펠러 3개가 돌아가며 하늘을 향해 뿜어내고 있었다. 바람의 세기는 시속 200km로 대형A급 태풍와 맞먹는다. 이 속도가 최소한 성인남성 한명이 공중으로 뜰 수 있는 속도라고 교관은 귀뜸했다.

 

박정이 고공과장(대위)은 "민간인으로 처음 타게된 것을 축하한다"며 "바람의 세기에 당황하지 말고 공중에서 자세를 잡는데 집중하라"고 말했다.

 

고공복과 고공헬멧, 방풍안경을 착용하자 공포심이 몰려왔다. 교관들이 양손을 잡고 엄청난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터널 한 가운데로 이끌었다. 바람 한가운데로 진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몸을 바닥에 눕혔지만 누워지지 않았다. 교관들에게 이끌려 몸을 눕히니 바람 때문에 숨을 쉴 수 없는 것은 물론 오전내내 배웠던 아치형 낙하자세까지 까맣게 잊어버렸다. 허둥지둥 그 자체였다. 5분정도 익숙해지니 대(大)자로 엎어져 누운 자세를 힘겹게 유지할 수 있었다.

 

기자의 손을 잡고 있던 고공교관이 통제실에 손가락으로 '0.K'사인을 알리자 눈 밑의 프로펠러는 더 강한 굉음을 내며 바람을 내 뿜었다. 바람의 속도는 250km. 실제 7km상공에서 자유낙하를 할 때 느끼는 바람의 속도다.

 

눈앞에서는 교관 한명이 팔로 자세를 방향을 잡고 허리를 좀 더 펴보라고 지시했다. 하늘을 향해 펴있던 팔과 다리를 좀 펴니 몸이 갑자기 급부상했다. 공중 3m지점까지 떠오르자 마치 새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기분 이구나"라고 느끼는 것도 잠시였다. 몸이 갑자기 뿜어져 나오는 바람을 벗어나더니 땅바닥의 안전철조망에 '뚝' 하고 떨어졌다. 방향을 잘못잡은 탓이다.

 

전영국 고공교관(상사)는 "공중이었다면 착륙지점에서 200m이상을 벗어났을 것"이라며 "자세를 잡지 못하면 낙하산줄에 몸이 얽혀 추락할 수 도 있다"고 강조했다.

 

재도전 해봤다. 다시 바람에 몸을 맡기자 이번엔 몸이 떠오르지 않았다. 눈앞에 교관은 경직된 몸에 힘을 빼라고 지시했다. 몸에 힘을 빼니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중심을 잡지못해 바람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이렇게 철조망으로 된 안전망과 안전쿠션으로 떨어지기를 수십 회 반복했다.

 

훈련을 시작한지 30분이 넘어서자 교관은 "오늘 훈련을 여기서 마치자"고 권유하며 "무리하게 타면 바람의 세기 때문에 허리에 손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허 리에 통증이 몰려왔다. 무릎을 보니 공중에서 떨어져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피멍 투성이었다.

 

윈드터널을 내려와보니 아침에 우습게만 보였던 코끼리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언젠가는 하늘에서 자유낙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부대 밖을 빠져나왔다. 뒤를 돌아 하늘을 보니 특전사 장병들이 낙하산을 펴고 자유롭게 내려오고 있었다. 험난한 훈련도 견뎌내는 자랑스러운 특전사장병들이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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