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염경엽 넥센 감독[사진=정재훈 기자]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신인감독들은 대개 오심의 불이익에도 선수단을 철수시키지 않는다. 주된 이유는 하나. 이후 경기에서의 보복을 우려한다. 선후배 관계가 철저한 프로야구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염경엽 넥센 감독은 올 시즌 처음으로 경기 도중 선수들을 더그아웃으로 불러들였다. 4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2013 프로야구 롯데와의 홈경기 3대 2로 앞선 8회 2사 2루 공격이다. 우익선상으로 떠오른 대타 오윤의 타구에 상대 2루수 정훈은 다이빙캐치를 시도했다. 파울라인 안쪽에 떨어지던 공은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정훈이 파울라인 바깥으로 넘어지면서 튀어나왔다. 강정호는 재빨리 홈을 통과했지만 이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명백한 안타를 추평호 1루심이 파울로 선언했다. 강정호는 긴 한숨을 뱉으며 조용히 2루 베이스로 돌아갔다. 그 뒤에 서 있던 상대 포수 강민호는 연신 어리둥절해했다.추평호 1루심 옆에서 상황을 지켜본 심재학 코치는 펄쩍 뛰었다. 바로 안타가 확실하단 제스처를 거듭 표시했다. 긴 설명을 귀 기울여 들었지만 추평호 1루심은 계속 고개를 가로저었다. 파울이 확실하다고 못을 박았다. 이어진 염경엽 감독과 이강철 수석코치의 강한 어필에도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팔짱을 끼고 나타난 오훈규 구심으로부터 빠른 경기 속개를 요구받았다. 단단히 화가 난 염경엽 감독은 심재학, 최만호 코치, 타자 오윤을 더그아웃으로 불러들였다. 경기를 포기하겠단 의사는 아니었다. 2루 주자 강정호를 베이스에 남겨놓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 대회요강은 ‘선수들이 1명도 남지 않고 모두 철수했을 때는 5분 경과 뒤 몰수패로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심에 무언의 시위로 대응하겠단 뜻이었다. 심판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훈규 구심은 바로 시계를 꺼내들어 지체되는 시간을 체크했다. 시계를 요요처럼 돌리는 여유도 보였다.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염경엽 넥센 감독[사진=정재훈 기자]
심판과의 첨예한 대립으로 판정이 번복된 사례는 거의 없다. 염경엽 감독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안다. 그럼에도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건 향후 오심 피해를 막겠단 강한 의지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염경엽 감독은 경기 뒤 “퇴장까지 생각했었다”고 밝혔다. 넥센은 올 시즌 오심의 최대 피해자 가운데 하나다. 특히 6월15일 잠실 LG전에선 잘못된 판정 하나로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0대 0으로 맞선 5회 수비 2사 만루에서 박용택의 타구를 잡은 3루수 김민성이 재빨리 2루로 공을 던졌지만 세이프 판정이 선언됐다. 명백한 아웃 타이밍이었지만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염경엽 감독의 잇단 어필도 소용없었다. 평상심을 잃은 선발투수 브랜든 나이트는 계속된 만루 위기에서 이병규(9번)에게 그랜드슬램을 맞았고, 결국 넥센은 0대 9로 졌다. 6연패를 끊을 수 있던 기회를 놓친 선수단은 이후 시즌 최다인 8연패를 당했다. 선수단을 철수시킨 이번 결과는 달랐다. 6분 뒤 재개된 경기에서 오윤은 중전안타를 쳐 2루 주자 강정호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넥센은 이후에도 허도환의 볼넷과 서건창의 적시타로 득점을 추가, 5대 2로 승리했다. 분위기 반전도 이뤘다. 넥센은 전날 롯데보다 3개 많은 13개의 안타를 때리고도 4대 5 역전패를 당했다. 잔루만 13개를 남긴 응집력 부족이 빚은 처참한 결과였다. 이날 오심까지 더해져 자칫 사기가 크게 꺾일 수 있던 위기에서 선수단 철수는 선수들에게 집중력을 불어넣었다. 한 선수는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 모두가 긴장을 했다. 오늘 경기를 절대 놓쳐선 안 될 것 같았다”고 전했다. 다른 선수는 “상대가 7회 2점을 뽑아 1점차로 쫓기고 있었는데 선수단 철수로 그런 분위기가 싹 사라졌다. 사생결단의 각오가 생겼다”고 말했다.승리를 거뒀다고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이 사라진 건 아니다. 선수들은 함구했지만 경기를 지켜본 야구인 대부분은 혀를 끌끌 찼다. 한 해설위원은 “관중도 구별하는 걸 왜 가장 가까이서 확인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 은퇴선수는 “올해처럼 오심이 많이 나오는 해도 드물 것”이라며 “심판교육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심판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오심에 대한 사과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대 프로야구에서 오심을 범한 심판이 직접 사과의 뜻을 밝힌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스포츠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